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적용될 디지털세 초과이익 배분비율이 25%로 확정됐다. 구글과 애플 등 고정사업장이 없어 세 부담이 적었던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에 세금을 매기기 위해 논의가 시작됐던 ‘구글세’가 미국의 요구로 결국 제조업으로 확대되면서 우리 기업까지 불똥이 튄 것이다. 조세부담 회피를 방지하기 위한 글로벌 최저한세율은 15%로 정해졌다.
8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주요20개국(G20) 포괄적 이행체계(IF)는 제13차 총회(영상)를 개최해 필라 1·2 최종합의문 및 시행계획을 확정했다. IF 140개국 중 케냐,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스리랑카를 제외한 136개국이 동의했다. 시행은 오는 2023년부터다.
필라1은 연간 연결매출액 200억 유로(약 27조 원), 이익률 10% 기준을 충족하는 다국적기업들이 초과이익의 25%를 본국이 아닌 시장 소재국에도 세금을 내도록 하는 디지털세 도입이 골자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과세 대상에 올라 한국에서 내던 법인세를 해외 각국에 내야 한다. 매출액 × (세전이익률 - 통상이익률) × 25%가 산식이다. 우리와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시장 소재국에 내는 초과이익 비율을 20%로 주장했으나 신흥국을 중심으로 100대 기업이 없는 국가들이 30%로 맞서 25%에서 절충점을 찾았다. 과세 대상에서 중간재 업종을 제외하자는 내용을 포함해 사실상 우리 정부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이와 관련 프랑스 등 기존 디지털서비스세 또는 유사 과세를 시행하려던 개별 국가에서는 이를 폐지하고 향후에도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IF는 7년 후 디지털세 부과 기업 매출 기준을 현재 200억 유로에서 100억 유로(약 13조 5,000억 원)로 축소할 계획을 갖고 있어 해외 매출이 많은 한국 기업들은 더 대상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디지털세가 도입되면 다른 나라에서 영업하는 우리 기업도 조세를 부담해야 하지만, 국내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기업에 대한 과세 기반도 확보할 수 있다”며 “우리 기업이 납부하는 것보다는 국내에서 과세권을 행사하는 게 훨씬 더 클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세수 측면에서는 넷플릭스, 구글 등으로부터 받게 될 세금이 적지 않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필라2는 연결매출액이 7억 5,000만 유로(약 1조 1,000억 원) 이상인 다국적기업에 대한 15% 이상의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이다. 최저한세율이 15%이고 저세율 국가의 실효세율 부담이 10%라면 미달 세액인 5%만큼을 본사(최종 모회사)가 있는 자국에서 추가로 과세하는 식이다. 논의되었던 범위 중 가장 낮은 15%로 의견이 모아지면서 지난 7월에는 반대 입장을 표명했던 아일랜드, 헝가리 등 저세율 국가들도 동참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인세 최고 세율이 27.5%(지방세 포함)여서 상대적으로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단, 기업의 급여 비용과 유형자산 장부가치 등 실질적인 사업 활동 지표의 5%는 과세표준에서 공제해주기로 했다. 또 소득산입규칙이 적용되지 않을 경우 다른 국가가 대신 과세권을 행사하는 ‘비용공제부인규칙’은 2024년부터 발효되며 해외진출 초기 단계의 다국적기업은 5년 간 적용 제외한다.
이번 합의안은 오는 13일부터 개최되는 G20 재무장관회의에 보고될 예정이며, 이후 이달 30일 열릴 G20 정상회의에서 추인될 예정이다. 기술적 쟁점사항들은 앞으로도 OECD IF를 통해 지속 논의된다. 내년 중순 서명식 후 개별 국가들이 자국 내 비준 및 입법 절차를 거치면 디지털세와 최저한세는 2023 발효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필라1을 통해 시장소재국에 과세권을 재배분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매출은 발생하지만 그간 충분히 과세하지 못했던 거대 디지털 기업에 대한 과세권 확보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필라2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으로 국가 간 무분별한 조세경쟁을 방지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를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도 “오늘의 합의는 경제 외교에서 한 세대에 한 번 있을 만한 성취”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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