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5년간 발행한 적자 국채 규모가 333조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올해 세금이 더 걷힌다고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주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제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파른 나랏빚 증가세와 악화된 재정수지를 고려할 때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낮다고 재정 여력 확보를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104조 원, 내년 77조 6,000억 원의 적자 국채를 찍을 예정이다. 2019년까지는 통상 20조~30조 원대를 기록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지난해(102조 8,000억 원)부터 급격하게 나랏빚이 불어났다. 2018~2022년 5년간 발행할 적자 국채는 333조 7,000억 원으로 이전 5년(2013~2017년)의 144조 8,000억 원보다 230% 증가한다.
더 큰 문제는 회복되지 않는 적자 살림이다. 씀씀이를 크게 늘려놓은 탓에 실질적인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내년부터 2025년까지 GDP 대비 4%대 적자가 계속된다. 적자 규모도 2022년 94조 원에서 2025년 109조 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과거 IMF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뒤 경기 회복과 함께 흑자 재정으로 빠르게 돌아선 것과는 전혀 다른 재정 운용이다. 지출을 대폭 줄이기도, 세입 확충을 위한 증세를 하기도 여건이 만만찮다. 게다가 지난해 기준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달러화·유로화·엔화 등 기축통화를 사용하는 미국과 유럽 등의 국가를 제외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비기축통화국 14개 국가 중에서는 6위로 높은 편이다.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세입 여건은 그나마 재정 건전성을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힌다. 정부는 올해 314조 3,000억 원의 국세 수입을 예상하고 있는데 자산시장 호황 덕에 이보다 10조 원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글로벌 경제 회복과 수출 호조로 내년에도 정부 전망(338조 6,000억 원)보다 증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난해와 그 이전 세수가 나빴던 부분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라면서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을 두 달 만에 바꿀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여당은 올해 증가하는 세수를 토대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주자는 공세를 높이고 나섰다. 이 후보는 이날 한 인터뷰에서 “국채 발행을 더 하자는 것이 아니라 초과 세수로 하되 필요하면 다른 사업도 일부 조정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3일 김부겸 국무총리가 “당장은 여력이 없다”고 반대 의사를 표한 데 대해 재차 의지를 밝힌 것이다. 공동선대위원장인 우원식 의원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연말까지 가보면 16조~17조 원 정도의 추가 세수가 생기는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런 정도면 지방교부금 40%를 내보낸다고 하더라도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충분히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1인당 25만 원으로 하려면 13조 원, 50만 원일 경우 26조 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1조 8,000억 원의 손실보상 지원금 예산도 3조 원 늘린 5조 원으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절차와 재원 모두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는 비판이 많다. 우선 추가로 세수가 더 들어와도 세계잉여금은 용처가 정해져 있어 국가재정법에 따라 지방교부세(금) 정산, 공적 자금 출연, 채무 상환, 세입 이입 등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특히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하려면 재난지원금이라는 새 비목을 만들어야 하는데 증액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다. 경상GDP 등 경제지표 변동이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두 달 만에 세입 전망을 바꿀 수도 없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부채를 먼저 갚는 국가재정법의 기본 원칙을 위배하는 재정 운용은 비정상”이라며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필요성과 재원 모든 면에서 적합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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