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수 공급 대란이 심화하자 정부가 요소수를 용도에 따라 차등 배분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의 ‘뒷북 대응’으로 공급 물량이 수요를 크게 밑돌자 물량 통제라는 고육책을 꺼내든 것이다. 정부는 동시에 해외 물량을 최대한 확보해 요소수 부족 사태로 인한 파급 효과를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9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민간 요소수 제조 업체에서 생산한 요소수를 긴급한 수요에 따라 차등 배분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특수차량이나 긴급한 물류 이송 차량을 우선 보급 대상으로 두고 개인 디젤 차량 운행용 물량 등을 후순위로 두는 방식이다. 정부 관계자는 “요소수 수요처를 일괄적으로 나열한 뒤 우선순위에 따라 재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정부가 도입을 예고한 긴급 수급 안정 조치의 일환이다. 긴급 수급 안정 조치가 시행되면 정부는 생산·판매업자 등에 생산·공급·출고 명령과 판매 방식을 지정할 수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 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정부는 긴급 수급 안정 조치를 동원해 마스크 원재료 수출을 통제한 바 있다. 요소수의 경우 생산 원료인 요소의 재고량이 이달 말이면 바닥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물량 소진 시점에 맞춰 판매 물량을 통제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요소수 수급 대응을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 관계자는 “소량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요소수가 시중에 유통 중”이라며 “(요소수 차등 배분 조치를) 당장 시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민간 생산 업체에 대한 물량 통제까지 검토하는 것은 요소수 공급난을 조기에 진화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국내 요소 수입선의 97%를 차지하는 중국이 지난달부터 수출을 제한하면서 국내 요소수 품귀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수출 제한 조치를 풀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해제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정부는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해외 물량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지만 대체 물량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정부가 이날까지 확보한 물량은 호주와 베트남 등에서 수입하기로 한 약 60만 ℓ, 국내 민간 수입 업체가 보관하던 약 600만 ℓ 등 총 660만 ℓ다. 하지만 하루 평균 국내 차량용 요소수 수요가 60만 ℓ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현재까지 확보한 물량을 총동원해도 열흘을 겨우 버틸 수 있는 수준에 그친다. 정부는 제3국을 통해 약 6,000만 ℓ(국내 수요 기준 100일분)의 요소수 추가 수입을 타진하고 있지만 유럽 등 요소수 부족 사태를 겪는 다른 나라도 물량 확보에 나선 터라 목표한 만큼의 물량을 국내로 들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당장의 보릿고개를 나기 위해서는 물량 통제가 불가피한 셈이다.
요소수 공급난이 조기에 진화되지 않으면서 물류업은 물론 자동차·철강·건설 등 산업계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요소를 주원료로 비료를 만드는 탓에 농업으로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 정부는 수급 상황을 확인하고 농가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지만 이렇다 할 묘수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밸류체인이 워낙 복잡한 탓에 모든 품목의 수급 상태를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도 “요소수의 경우 공급난이 발생할 조짐이 감지됐는데 이를 놓친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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