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기가 종료되지 않아 연료 조정 요인이 얼마나 될지는 아직 산정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연료비 연동 범위를 넘어서면 당연히 기준 연료비도 조정해야 합니다.”
정승일 한국전력 사장은 지난 10일 취임 이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실제 한전이 올 3분기 1조 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이 같은 정 사장의 발언은 현실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3분기 한전의 적자 규모 확대는 액화천연가스(LNG)나 석탄 등 연료비 인상이 주된 요인이지만 신재생 보급 과속에 ‘묻지마 탈원전’ 정책까지 맞물려 향후 적자 증가 폭이 한층 가팔라질 것이 확실시 된다. 우선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에 따른 신재생 관련 송배전망 구축에만 향후 10여 년 동안 수십조 원의 추가 예산 투입이 불가피하며 신재생의 발전 간헐성을 제어해줄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에도 천문학적 예산이 필요하다. 이 같은 상황에도 정부는 향후 인플레이션 우려 등으로 전기요금 인상을 억누를 가능성이 높아 다음 정부에서는 한전 재무 구조 건전화를 위한 ‘혈세’ 투입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8년 대규모 적자에 정부가 추가 경정 예산 6,680억 원을 긴급 투입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국가적 위기를 겪은 2008년과 달리 현재는 탈원전 등에 따른 정책 비용이기 때문이다.
한전은 연결 기준 올 3분기 영업손실 규모가 9,367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적자 전환했다고 12일 밝혔다. 한전 측은 “제조업 평균 가동률 증가 등으로 올 들어 3분기 누적 기준 전력 판매량이 4.6% 증가한 반면 올 1분기 전기요금을 1㎾h당 3원 인하한 이후 올 3분기까지 이 같은 요금제가 계속 적용돼 전기 판매 수익은 1.9% 늘어나는 데 그쳤다”며 “국제 연료 가격이 크게 상승한 가운데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석탄 발전 상한 제약 시행, 전력 수요 증가 등으로 LNG 발전량이 증가한 것 또한 비용 증가의 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신재생망 구축에 따른 비용 증가도 영업손실 규모를 키웠다. 한전에 따르면 신재생 설비의 계통망 연결을 위한 송배전 설비 취득 관련 감각상각비가 전년 동기 대비 7,352억 원 늘었다. 한전 측은 “향후 연료 가격 상승 영향이 지속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같은 손실 규모를 줄이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시사했다.
현재 연료비 추이만 보면 한전은 향후 몇 년간 꾸준히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1㎾h당 전력 단가는 전년 동기 대비 58%가량 껑충 뛴 90원 24전을 기록했다. LNG 가격 상승 추이는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북해 연안의 풍력이 약해지며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은 유럽이 LNG 도입량을 늘린 데다 올겨울 역대급 한파가 불어닥칠 것이라는 전망까지 더해지며 전 세계적으로 LNG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50년 ‘완전퇴출론’이 나오는 석탄 발전 또한 각국의 전력 수요 증가 및 ‘블랙아웃(대정전)’ 방지를 위한 노후 발전소 가동 재개 등으로 원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국내 발전량의 40%가량은 석탄 발전이 차지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한전의 올해 연간 기준 영업 손실 규모가 4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는다. 실제 한전은 중장기 재무 계획을 통해 올 한 해만 4조 3,845억 원의 영업손실을 예측한 바 있다.
한전의 영업손실은 향후에도 더욱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9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오는 2030년 신재생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8% 수준이지만 탄소중립위원회는 NDC 상향안을 통해 신재생 발전 비중을 30.2%로 늘려 잡았다. 이 같은 비중을 맞추기 위해서는 신재생 관련 송배전망 예산을 최소 1.5배 이상 늘려야 한다. NDC 상향안 발표 전 공개된 중장기 재무 전망에 따르면 한전은 향후 5년간 총 33조 9,171억 원을 송배전망에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한전이 신재생에너지 변동성 대응을 위한 ESS 구축에 향후 2년간 투입해야 하는 예산이 1조 1,202억 원에 달한다. 이 또한 신재생 발전 비중 상향에 따라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원전 비중은 2024년을 고점으로 차츰 줄여나가 LNG나 신재생 등 값비싼 에너지원에 대한 의존을 높일 수밖에 없다. 지난달 기준 1㎾h당 원자력의 정산 단가는 35원 10전인 반면 LNG는 126원 10전, 태양광은 107원 80전(RPS의무 이행 비용 정산금 제외 기준)으로 원전의 경제성이 압도적이다.
정부는 이 같은 한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신재생망 구축 관련 비용이 반영된 신규 요금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만 국민 반발 등을 감안했을 때 실제 도입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한전의 최대주주를 살펴보면 산업은행(32.9%)과 기획재정부(18.2%) 등 정부 지분이 과반을 차지한다”며 “한전 재무 구조 악화 기조가 지속될 경우 국민 세금으로 이를 다시 메워주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상황이 계속 연출될 것”이라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