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세계 최대 이동통신 사업자 버라이즌과 코로나19 백신 개발사 모더나 수뇌부를 연달아 만나며 글로벌 경영 활동을 재개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의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와 차세대 이동통신부터 직접 챙기며 ‘새로운 삼성’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17일(현지 시간) 세계 최대 이동통신 사업자인 버라이즌의 미국 뉴저지주 본사를 찾아 한스 베스트베리 최고경영진(CEO) 등 고위급과 차세대 이동통신 분야 협력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두 회사는 지난 2018년 세계 최초로 가정 내 5세대(5G) 이동통신 서비스를 개시한 데 이어 이듬해 일반 휴대폰 5G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상용화했다. 이를 계기로 지난해 9월에는 삼성전자가 버라이즌에 7조 9,000억 원어치 5G 이동통신 장비와 솔루션을 공급하기로 했다. 국내 통신 장비 부문 역대 최대 수출 규모다. 두 회사 간 긴밀한 관계만큼 이 부회장과 베스트베리 CEO 간 인연도 각별하다. 두 사람은 2010년 스페인에서 열린 모바일 전시 행사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각각 삼성전자 부사장과 스웨덴 통신 기업 에릭슨의 회장 자격으로 처음 만난 후 10년 이상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수출 성과의 배경에도 이 부회장의 네트워크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양 사가 이번 교류를 계기로 5G뿐만 아니라 6G 등 미래 기술 분야로 협력을 확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그간 차세대 통신 시장 개척을 위해 전담 조직을 만들고 연구개발(R&D)과 마케팅을 진두지휘했다. 버라이즌을 비롯한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리더들과도 활발히 교류하며 5G 네트워크 통신 장비 영업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
이 부회장은 이보다 하루 전인 16일에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서 누바 아페얀 모더나 공동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도 만났다. 아페얀 의장은 바이오 제약 관련 투자회사인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을 통해 혁신적 바이오텍을 발굴·육성해 온 업계 리더다. 그는 2009년 모더나를 공동 설립했으며 스테판 방셀 모더나 CEO도 아페얀 회장이 직접 영입했다.
아페얀 의장이 설립한 파이어니링 본사에서 진행된 이번 만남에서 이 부회장과 아페얀 의장은 코로나19 백신 공조와 더불어 추가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 부회장은 올 8월 가석방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국내에서 위탁 생산하는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을 국내에 조기 공급하기 위해 방셀 CEO 등 모더나 경영진과 대화 창구를 열고 신뢰 구축에 힘을 쏟았다.
삼성과 모더나가 단순히 백신 개발사와 위탁 생산자 관계에서 그치지 않고 백신 수급과 바이오산업의 미래를 함께 논의하는 사업 파트너가 된 만큼 이번 만남으로 한국이 글로벌 백신 허브로 도약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특히 삼성이 모더나로부터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의 핵심 기술을 이전 받을 수 있는 원료의약품(DS) 생산을 수주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이번 아페얀 의장과의 회동을 계기로 글로벌 바이오 업체들과의 접촉면을 더욱 넓힐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회장은 올 8월 향후 3년간 240조 원을 투자하는 내용의 ‘코로나19 이후 미래준비’ 계획을 발표하면서 바이오산업에서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차세대 이동통신과 바이오는 이 부회장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집중 육성하기로 한 삼성의 ‘미래 성장 사업’으로 꼽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직접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며 “‘뉴삼성’을 향한 발걸음이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부회장은 이어 미국의 고위급 정·관계 인사와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의 전용기는 17일(현지 시간) 뉴저지를 떠나 워싱턴 공항에 착륙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 갈등 속에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계에 주요 영업 정보를 요구하는 등 국제 정세가 사업에 미치는 영향이 확대됐다. 그만큼 이 부회장의 폭넓은 네트워크가 중요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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