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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겨울 이겨내듯…숭고했던 176년 여정

[문화재의 뒤안길] 세한도

추사 김정희가 그린 국보 ‘세한도’. /사진 제공=문화재청




국보 ‘세한도(歲寒圖)’는 1844년에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귀양살이할 때 그린 그림이다. ‘세한(歲寒)’은 ‘한겨울 추운 날씨가 돼서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歲寒然後知 松栢之後凋)’는 뜻이다. 제자 이상적이 유배 중인 자신에게 굳건하게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고 그를 송백(松柏)의 지조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김정희는 그림 옆에 “그대가 나를 대함에 있어 유배 전에 더 잘한 것도 없고, 그 후에 더 못한 것도 없다”는 글을 적었다. 조선 말기 학문과 예술을 풍미하다 말년에 귀양살이를 하게 된 김정희가 몸소 느낀 절조의 의미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후 ‘세한도’는 여러 수장가들을 거쳤고 1930년대에는 일본인 후지즈카 치카시의 수장품이 됐다. 경성제국대 교수였던 그는 김정희를 연구하며 자료를 수집했고 ‘세한도’를 일본으로 가져갔다.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던 1944년에 서예가 손재형은 후지즈카를 끈질기게 설득해 ‘세한도’를 고국으로 가져왔다. 곧이어 일본에는 미군의 공습이 이어졌고 후지즈카의 연구실도 폭격을 받았다.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 같은 귀환이었다. 이후에도 여러 손을 거쳐 1970년대에 안목 높은 수장가 손세기에게 전해졌고 지난해 그의 장남 손창근에 의해 아무 조건 없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기증됐다. 1844년에 제작된 후 176년간 이어진 ‘세한도’의 긴 여정이 숭고하게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추사 김정희가 1844년에 그려 제자 이상적에게 선물한 후 여러 수장가의 손을 거쳐 지난해 아무 조건 없이 국가에 기증된 국보 ‘세한도’. /사진 제공=문화재청


‘세한도’의 기증이 알려진 후 국민들의 관심이 달아올랐다. 높은 예술성뿐 아니라 작품에 담긴 여러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를 견디고 있는 지금이 가장 혹독한 겨울인지도 모른다. ‘세한도’를 보며 우리 각자의 겨울을 무사히 버텨내기를 바라본다. /박지영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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