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강의의 목적은 주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주식을 해서 돈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님을 주의하라”
지난 가을 서울대 첫 ‘주식심리학' 강의를 개설한 오성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강의계획서에서 수업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투자의 왕도’를 가르치는 강의가 아닌 인간의 감정과 심리가 주식 투자에 얼마나 취약하게 설계됐는지를 해부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오 교수는 지난 17일 학생들의 보고서를 제출받은 것을 끝으로 한 학기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해 처음으로 주식의 세계에 입문한 그는 항공주와 바이오주에 접근했다가 손실을 입었다. 심리학자인 그는 자신이 단순히 초보자이기 때문이 아닌 차트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지각 체계 때문에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오 교수는 주식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현상에 관심이 생겼고 학생들에게 이를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인 교과목에서 벗어나 ‘주식심리학’이라는 새 영역을 개척한 이유다.
현실 세계의 사고 도식, 주식시장서 활용하면 ‘필패’
그는 실제 생활에 적응된 인간의 지각·감각 체계가 주식 시장에서 동일하게 작동하면서 투자 성공 확률을 낮춘다고 지적했다. 거리를 이동하는 자동차와 사람, 운동장을 굴러다니는 공은 사회와 물리 법칙에 종속돼 있어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주식 세계는 이 같은 법칙과 무관하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실제 많은 투자자들이 분봉 차트가 올라가면 그 기세에 편승하려 매수 버튼을 누르지만, 주식시장에서 오를 때 사고 떨어지는 추세에 발맞춰 팔아 돈을 벌기란 쉽지 않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데 건너편 엘리베이터의 문이 먼저 열리면 우린 그쪽으로 건너갑니다. 그래야 시간 절약이 가능하고 그게 효율적이죠. 하지만 주식 세계에선 그래선 안 됩니다. 내 주식이 가만히 있으니 답답함에 팔고 급등주를 매수했다간 쓴맛을 보기 일쑤입니다. 시간을 아끼려는 현실 세계 습관이 주식에서는 큰 실패를 불러올 수 있는 셈이죠”
스마트폰 의사결정 정교함 훼손…'주식 투자' 학문으로 연구 지속할것
그가 출제한 이번 학기 중간고사 문제 중 하나는 ‘스마트폰과 주식의 관계를 서술하라’였다. 스마트폰은 시세에 영향을 줄 만한 정보를 즉각 전달해주고 언제 어디서든 매매가 가능하도록 한 ‘주식 광풍’의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오 교수는 스마트폰은 존재만으로 수익률을 좀 먹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마트폰이 인지 능력을 빼앗으면서 종합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문제를 단순하고 직관적인 사고만을 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그는 “스마트폰 사용자는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멀티 태스킹’을 한다”며 “스마트폰은 즉흥적인 투자를 유도하면서 주식의 장기 보유를 가로막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관련 연구를 지속하면서 내년에도 동일한 수업을 열 계획이다. 그는 “심리학계에서 투자를 학문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희박해요. 그래서 올해 수업 자료 구하는 데 애를 먹었죠”라며 “향후 주식 심리학 분야를 깊게 연구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허무하게 돈을 잃는 실수를 줄이는 데 도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말 지금껏 분석과 연구 내용을 담은 도서 ‘차트의 유혹’ 출간을 앞두고 있다.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심리학과 전공 수업임에도 타과 학생이 찾아와 수업을 듣기도 했다. 김찬일 서울대 지리학과 학생은 “2019년부터 주식을 시작해 주식에 평소 관심이 많았다. 투자 과정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변화가 궁금해 수업을 듣게 됐다”며 “원하는 정보만 흡수하는 인간의 감정·사고 편향을 배우는 기회였고, 감정 조절 능력도 키우면서 실전에서 실수를 줄일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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