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광주시의 ‘비엔날레 상징 국제타운 조성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에 올랐다. 축구장 절반 크기의 자료관을 새로 만들고 주변에 공방촌·음악관 등을 둔 문화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게 사업의 골자다. 국비 385억 원을 포함해 총 사업비만 1,175억 원에 달하는 거대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경제성 분석 결과는 처참했다. 편익 대비 비용은 0.14로 기준치인 1에 한참 못 미쳤다. 사업에 수반될 모든 비용과 편익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결과인 NPV는 -2,236억 원으로 추산됐다. 조사를 주관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해당 사업에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서울경제가 21일 2010년부터 10년간 예타조사 대상에 오른 사업(사업비 500억~1,000억 원, 국비 300억~500억 원)을 전수조사한 결과 비엔날레 국제타운 조성 사업처럼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한 사업은 부지기수였다. 정부는 그럼에도 예타 문턱을 낮추는 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혈세 낭비가 불 보듯해 퇴짜를 놓았던 부실 사업에 다시 ‘예타 패스권’을 쥐어주려는 것이다. 특히 시점도 문제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예타 문턱이 낮아질 경우 내년 초부터 선심성 지방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밀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세재정연구원장을 지낸 박형수 연세대 객원교수는 “국가의 한정된 재원을 꼭 써야 할 때 쓰게 하려면 예타가 보다 엄격하게 진행돼야 한다”면서 “정치권뿐 아니라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예타를 유연하게 해야 한다’는 기조가 점점 짙어지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예타 기준 완화를 검토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수도권과 지역 간 불균형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다. 현행 예타 비대상 사업 기준이 20년 전에 만들어져서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예타제도는 1999년 도입된 이래로 선정 기준이 줄곧 500억 원(국비)였다”면서 “그간 경제 규모와 물가가 올랐던 점을 고려하면 현실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대상 사업 기준 이외 예타제도의 근간을 이루던 기준은 그간 조금씩 허물어져왔다. 도입 초기 경제성 분석만 하던 예타는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경제성 가중치가 낮아지고 정책성, 지역 균형 발전 평가도 함께 이뤄지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비수도권은 경제성 분석 비중을 기존 35~50%에서 30~45%로 낮추고 25~35%였던 지역 균형 발전 분석 비중은 30~40%까지 높였다. “예타의 기본 골격이 너무 오래된 버전”이라는 정부 설명은 절반만 맞는 셈이다.
지역 사업에 대한 빗장을 푼다고 지역 균형에 기여한다는 논리도 한계가 있다. 박 교수는 “제대로 된 도로가 안 닦여 있어서 지방이 위기에 처한 게 아니다”라면서 “지역 살리기와 예타 기준 완화를 연동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심사에만 1년이 넘게 걸려 사업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예타 자체를 면제하는 것은 과하다는 반론이 많다. 예타 업무를 담당했던 한 전직 관료는 “심사 과정 자체만 놓고보면 몇 년씩 걸리는 일은 거의 없다”면서 “지방자치단체에서 애초에 성긴 사업계획서를 가져오는데 가능한 통과시켜보려고 수정을 몇 차례 요구하다보니 심사 기간이 길어지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예타 허들을 점점 낮추는 사이 국가 재정 운용은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우려한다. 특히 어려운 의무 지출 비중이 총 지출 대비 50%에 이를 정도로 높아 재량 지출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예타 기준마저 허물어진다면 긴급히 필요한 수요나 미래를 대비한 재정 투입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예산 쓰임이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일을 막아보겠다고 만든 게 예타”라면서 “기준 상향이 불가피하다면 점진적으로 높이는 게 적절할 텐데 (정부 안은) 다소 과한 감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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