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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스토리] 도현순 케이옥션 대표 “미술품 경매에 금융시스템 접목…유통시장 더 투명해졌죠”

경제학 전공, 한은·맥킨지 등 근무 이력

갤러리현대 창업주 어머니 일 도우며

채권시장과 유사점 착안 효율 제고 확신

경매회사 출범 이후 2011년 본격 합류

작품 입고서 배송까지 조직 육성·전문화

안정적 성장 힘입어 내달 코스닥 상장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케이옥션에서 도현순 대표이사가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성형주 기자 2021.12.17




주말에도 일을 해야 했던 어머니는 세 살 난 아들을 안고 출근했다. 어머니가 손님과 마주앉아 미술품 상담을 하는 동안 아이는 햇살이 잘 드는 2층에서 그림 냄새를 맡으며 놀았다. 지난 1970년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적 상업화랑으로 종로구 인사동에 문 연 현대화랑(현 갤러리현대)에서다. 도현순(54) 케이옥션 대표가 미술에 대한 자신의 첫 번째 기억으로 꼽는 장면이다. 도 대표는 박명자 현대화랑 창업주의 장남이며,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의 형이다.

미술품 전문 경매 회사로 2005년 11월 출범한 케이옥션은 경쟁사인 서울옥션과 더불어 한국 미술 시장의 양대 경매 회사로 자리 잡고 있다. 두 회사의 점유율이 전체의 90%를 차지한다. 마치 글로벌 경매사 소더비와 크리스티와 같은 양강 구도다. 케이옥션은 그중 후발 주자지만 국내 최초로 정기 온라인 경매를 시도했고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는 비대면 라이브 경매를 진행하며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뤄왔다. 이를 기반으로 다음 달에는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다. 상장 추진으로 분주한 도 대표를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케이옥션 사옥에서 만났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케이옥션에서 도현순 대표이사가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성형주 기자 2021.12.17


“미술을 어려서부터 접하기는 했지만 내가 미술 전문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좋은 회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일 뿐이에요. 좋은 회사란 훌륭한 동료들이 이 일을 더 하고 싶게 만들고,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함께 성장하는 회사죠.”

도 대표의 말대로 그는 미술 전공자가 아니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어머니가 ‘미술계의 대모’이니 화랑업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산업은행에서 35년간 근무한 부친을 더 많이 닮았다. “감성보다는 논리와 팩트를 중시하는 경향이라 문과생이면서도 수학과 물리학을 더 좋아해 전공도 경제학을 택했다”고 말하는 그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입사한 도 대표의 첫 직장은 한국은행이었다. 대한민국의 대외 자산을 다루는 외화자산운용 업무를 맡아 약 22조 원 규모를 굴렸다. 지금은 한국은행 외자운용원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운용 규모도 400조 원 이상으로 커진 곳이다. 미술 감상을 위해 전시장을 다니거나 그림을 사고파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이었다.

실력 있는 그를 ‘아시아 금융시장의 허브’인 홍콩이 불러냈다. 리먼브러더스와 페레그린증권에서 일하며 아시아 채권 유통을 맡았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고 있을 때는 맥킨지에 근무하며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을 “살려내는” 컨설팅 업무를 진행했다. 기업들의 잇단 도산으로 은행들이 부실해지고 그로 인해 은행 간 합병이 진행될 당시 금융위원회의 정책 결정에 관한 자문을 제공하고 예금보험공사의 공적자금에 대한 정부 대주주의 경영 계약과 지배구조를 들여다봤다. 도 대표는 “외국계 회사에 있으면서 우리나라가 금융위기를 헤쳐나가는 중요한 계기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는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17일 서울 강남구 케이옥션에서 도현순 대표이사가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성형주 기자 2021.12.17


‘어머니의 일’이었던 화랑을 살펴보게 된 것은 그 무렵의 일이다. 그는 “미술 비즈니스라는 측면에서 경영적으로 도움 될 일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면서 “전략·조직·인사·재무·회계·영업관리 같은 경영과 금융의 모든 부분에 관해 도움을 드렸다”고 말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주말에 화랑으로 출근했듯 도 대표 또한 주말마다 쉴 시간을 쪼개 화랑으로 찾아가 경영을 도왔다. 1998년에 서울옥션이 출범한 터라 미술품 유통의 체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도 대표가 케이옥션 설립을 주도하는 계기가 됐다.

“미술과 금융은 전혀 다른 영역이지만 미술시장과 채권시장이 무척 비슷하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채권은 OTC마켓이라는 장외시장에서 각 금융기관의 데스크를 통해 거래되는 것이라 영업 조직이 있고 사는 쪽과 파는 쪽이 서로 연락해서 거래가 성사됩니다. 여러 상대에게서 사거나 팔고, 위탁받아 거래하기도 하는 구조가 아트 비즈니스와 흡사하죠. 거의 같은 구조예요. 선진 금융기관의 채권부문 세일즈 트레이딩이라는 발달된 조직과 전산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면 경매회사도 효율적인 미술품 유통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케이옥션의 1대 주주로 출발부터 지켜본 도 대표가 ‘외곽지원’을 넘어 본격적으로 회사에 합류한 것은 2011년부터다. 앞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미술시장이 좀처럼 회생 기미를 찾지 못한 채 바닥을 헤매던 시기다.

“당시 20명도 안 되던 직원이 지금은 100명 이상입니다. 조직을 키우면서 기능 중심으로 체계화·전문화를 착착 진행했죠. 미술품이 들어오면서부터 나가기까지 고객 담당자, 위탁 업무, 배송 전문 업무, 입고된 작품 정보 입력과 감정 전문 조직이 있습니다. 가격 책정(pricing)만 전담하는 팀도 따로 있어요. 판매는 고객을 상담하는 일이니 고객담당팀에서, 전시 업무는 물류 담당이 겸하는 식으로 체계화했습니다. 이걸 연결해 긴밀한 작동을 가능하게 하는 IT팀이 있습니다. 자체시스템인 K오피스가 이 업무만 전담합니다. 그 결과 제한된 작은 공간에서, 인력도 많지 않지만 매주 온라인 위클리경매부터 매달 열리는 메이저경매 외 프리미엄 온라인경매를 번갈아 열 수 있는 표준화·전문화가 가능하게 됐죠.”

17일 서울 강남구 케이옥션에서 도현순 대표이사가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성형주 기자 2021.12.17


도 대표의 등장과 함께 “아트 비즈니스는 주먹구구식”이라는 소리가 ‘옛말’이 됐다. 미술품 소장자가 그림을 팔고 싶을 경우 케이옥션에 위탁만 하면 작품의 가격, 특징, 시장에서의 수요 등에 맞춰 위클리경매·프리미엄경매·메이저경매 등으로 ‘알아서’ 분류돼 판매가 진행된다. 경영인으로서 그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예측 가능성’이다. “경매는 이벤트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도 대표는 “매주 혹은 매달 경매가 항상 열린다는 지속성이 확보돼야 거래 안정성, 가격 일관성이 유지되고 이것이 시장 투명성 유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케이옥션 홈페이지를 통해 작가 정보까지 큐레이팅해 둔 것은 미술품 거래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는 의지다.

이 덕분에 재테크와 취향 소비에 민감한 MZ세대 고객의 유입이 늘었다. “매주, 항상 경매가 진행 중이니 편하게 접근하고 맘 편히 사고팔 수 있는 기반이 됐습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컬렉터블한 아이템’에 관심 많은 20~30대를 중심으로 40대까지 신규 고객이 늘었고 그분들이 온라인경매로 시작해 메이저경매에도 입찰하는 ‘큰 고객’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눈에 띕니다.”

미술시장이 전례 없는 호황기를 만난 데다 신규 컬렉터층의 저변 확대까지 맞물린 상황은 상장을 앞둔 케이옥션에 ‘청신호’가 됐다. 문제는 활황세의 지속 여부다. 도 대표는 “통화정책의 영향을 받을 수 있기는 하나 미술품이라는 희소가치 있는 자산을 보유하고자 하는 수요는 꾸준할 것으로 예상되고 그에 대한 가치도 꾸준히 상승할 것”이라고 조심스레 내다봤다.

금융인 출신 최고경영자(CEO)이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케이옥션이 ‘미술품’ 경매 회사라는 점이다. “케이옥션은 아트컴퍼니입니다. 희소자산으로서의 예술품과 금융 상품은 엄연히 다릅니다. 이자도, 배당도 없는 미술품을 주식, 채권, 부동산 임대와 동일 기준의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물론 상당한 재무적 가치를 안겨 주기도 하지만 훌륭한 예술은 고객과 사회에 감동과 영감을 준다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죠. 그 역할이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시장을 투명하게 만드는 게 저희가 해야 할 일입니다.”

He is…

△1967년 서울 △1989년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 △1989~1993년 한국은행 외화자금과 △1993~1994년 리먼브러더스 홍콩 △1994~1998년 페레그린증권 홍콩·서울 △1998~2000년 맥킨지 서울 △2001~2008년 리먼브러더스 서울 △2009~2011년 인텔렉추얼벤처스 한국총괄 △2010~2013년 네이버㈜ 사외이사 △2011년 케이옥션 전무이사 △2018년~ 케이옥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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