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6년 증권거래소가 설립된 이래 새해 증시 개장식에 유력 대선 후보가 참석한 적은 없었다. 자본시장 참여자가 적다 보니 정치권에서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이다. 그러는 동안 자본시장은 ‘투자는커녕 투기의 장’이 됐다. 상황은 지난해 ‘동학개미’들이 주가지수 3,000포인트를 떠받치며 달라졌다. 1,000만 동학개미들이 뭉치자 정치권도 앞다퉈 자본시장에 대한 공약을 내세우며 표심 구애를 시작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나란히 빨간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3일 새해 증시 개장식과 서울경제 증시대동제에 참석했다. 유력 대선 후보가 증시 개장식에 참석한 것은 증권거래소 설립 이후 처음이었다.
동학개미에 대한 두 후보의 표심 구애는 이날 개장 직전에 작성한 한국거래소 방명록에서도 확인됐다. 이 후보는 ‘자본시장 투명화, 신속한 산업 전환으로 주가지수 5,000포인트를 향해 나갑시다’라고 썼고, 윤 후보는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큰 도약을 기원합니다’라고 적었다. 두 후보 모두 성장과 공정을 내세워 주식시장을 장기 투자가 가능한 투자처로 탈바꿈시켜 개미투자자들을 보호하겠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이 후보는 지난해 12월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도 “공정만 회복해도 코스피 5,000포인트 달성이 가능하다”고 밝히며 증권 범죄 제재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지 2021년 12월 10일자 1·4·5면 참조
윤 후보 역시 “소액주주의 권리가 등한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주가조작을 통해 얻은 범죄 수익은 확실히 환수해 주가조작을 시도할 경제적 유인을 없애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이·윤 후보가 개인투자자 보호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데는 국내 개미투자자들의 절박함이 한몫했다. 주식시장은 번번이 증권파동(1962년 5월), 동양그룹 기업어음(CP) 사태(2013년) 등 투자자 보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 보니 주식시장의 공신력은 떨어지고 투자 대신 투기의 오명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도 시장을 지킨 것은 투자자들이었다. 외국인과 기관이 좌우했던 시장을 개미투자자들이 이탈하지 않으면서 지난해 주가지수는 3,000포인트를 넘어섰다. ‘영끌’ 투자까지 이어져 부작용이 지적됐지만 그간 관심을 두지 않던 정치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이후 이 후보는 대주담보비율 조정, 윤 후보는 증권거래세 완전 폐지 등 자본시장 공약을 경쟁하듯 내놓고 있다.
이 같은 시장의 부침을 의식한 듯 이 후보는 이날 “소위 부실주, 작전주, 단타, 심지어 풋옵션 매도까지 하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때 완전히 깔끔하게 재산을 정리했던 기억이 있다”며 경험담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잠깐 유행한다고 부실 작전주를 사면 나중에 후회할 수 있다. 저도 우량 가치주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같은 자리에서 윤 후보는 “최근 포퓰리즘의 득세 조짐과 자유로운 기업 활동에 족쇄를 채우는 규제 움직임 등으로 반기업 정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이 후보를 겨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윤 후보는 “퇴직연금·개인연금 등 국민의 노후 대비 자금이 자본시장에 투자돼 그 결실을 국민들이 고스란히 누리도록 제도와 세제 혜택이 잘 정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동제에 참석한 두 후보 모두 빨간색 넥타이와 마스크를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이 후보는 민주당의 상징인 파란색 대신 빨간색 줄무늬 넥타이를, 윤 후보는 빨간색 바탕에 흰색 무늬가 들어간 넥타이를 각각 맸다. 주식시장에서 빨간색은 상승장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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