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오는 3월 31일이면 임기를 마칩니다. 40년 만에 처음 연임에 성공한 총재로서 보낸 8년 임기의 끝 지점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이 총재가 기준금리 결정에 참여할 일도 이제 2월 24일로 예정된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한 번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총재는 하루 전인 지난 14일 금통위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1.0%에서 1.25%로 0.25%포인트 올린 뒤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성장·물가 등 실물경제 상황에 비하면 여전히 완화적인 수준”이라며 “금융 불균형 상황까지 고려하면 기준금리를 추가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인상해 1.50%가 되더라도 이를 긴축으로 볼 수 없다”고 덧붙이면서 최소한 1.50%까지는 금리를 올릴 것을 강하게 시사했습니다. 임기가 끝나기 전에 금리를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되돌린 만큼 이제는 여유를 가질 것으로 봤는데 오히려 매파(통화 긴축 선호) 본색을 가감 없이 드러낸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 총재는 임기 안에 금리를 1.5%까지 올릴 수 있을까요? 시장에서는 지난해 11월과 이번 달에 이어 다음 달까지 세 번이나 연달아 금리를 올리긴 힘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미 이달 금리를 1.25%로 올리면서 두 번 연속 인상했는데 이는 2007년 7월과 8월 이후 14년 5개월 만에 처음입니다. 아무리 경기 회복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금리를 단기간에 세 차례 연달아 올리면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다음 3월 회의는 기준금리를 결정하지 않고 금융안정회의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기준금리 결정은 다시 4월로 미뤄지고, 1.50%로 올리는 임무는 차기 총재가 맡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상 이 총재가 차기 총재에게 금리 인상 과제를 던진 셈입니다. 문제는 이 총재 임기가 오는 3월 9일 대통령 선거와 5월 10일 차기 정부 출범일 사이에 마무리된다는 겁니다. 임명권자는 문재인 대통령이지만 차기 총재는 다음 정부와 호흡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대선 결과에 따라 당선인과 협의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은법상 차기 총재가 임명되지 않더라도 이 총재는 임기를 마친 뒤 떠나고 금통위에서 미리 정해둔 순서에 따라 주상영 금통위원이 금통위 의장을 대행하게 됩니다. 당연직 금통위원인 이 총재 한 명이 빠지더라도 금통위는 6명이 참석해 금리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금통위 의장 대행을 맡을 차례인 주 위원만 현재 금통위에서 유일한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로 꼽힙니다. 나머지 금통위원 5명 모두 매파(통화 긴축 선호)인 만큼 4월 14일이나 5월 26일 인상도 가능하긴 합니다. 매파 중 한 명인 임지원 금통위원이 5월 초 퇴임하기 때문에 5월보다는 4월이 변수가 적습니다. 다만 총재가 공석인 상황에서 금리를 무리하게 올린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차기 총재가 임명되더라도 대선 결과와 맞물려 있다 보니 정책 성향이 어떨지 짐작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 총재 생각에 동의하는 매파 성향이라면 2분기 내 인상은 어렵지 않을 전망입니다. 새 총재가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금리를 올린 전례도 많습니다. 박승 총재는 2020년 4월 취임 후 불과 한 달 만인 5월에 금리를 올렸고, 이성태 총재도 2006년 4월 취임해 두 달 만인 6월에 금리를 올렸습니다. 2010년 4월 취임한 김중수 총재 역시 석 달 뒤 금리를 올렸습니다. 다만 차기 총재가 비둘기파라면 이 총재의 금리 인상 의지는 꺾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2분기 인상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대선과 총재 교체가 몰려 있는 3월 이후엔 당분간 통화정책 휴지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입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대선과 총재 임기 등 정치적 이벤트가 예정돼 있고 기준금리 인상 파급효과를 봐야 한다고 한 만큼 오는 7월까지 금리 인상을 쉬어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지나 IBK투자증권 연구원도 “대선과 총재 변경 이슈로 당장 2월 금통위에서는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한다”라며 “인상 파급효과를 지켜볼 필요도 있어 정책 휴지기를 갖은 후 3분기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사실 전날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면서 추가 인상 시기에 대한 힌트를 남겨두긴 했습니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 “완화 정도의 추가 조정 시기는 코로나19의 전개 상황 및 성장·물가 흐름의 변화, 금융 불균형 누적 위험, 기준금리 인상의 파급효과, 주요국 통화정책 변화 등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판단할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코로나 영향, 성장·물가, 금융 불균형, 주요국 통화정책 등은 이전에도 있었던 내용이지만 ‘기준금리 인상의 파급효과’는 처음 들어간 내용입니다.
간담회에서도 통방문 문구 변경이 속도 조절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이에 이 총재는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지 5개월이 됐고 이날까지 세 차례 올렸기 때문에 금리 인상 효과를 이제는 계측해볼 수 있게 됐다”라며 “앞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할 때는 지금까지 취한 조치 효과를 살펴보는 게 당연하고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금리 인상 효과를 살펴보기로 한 만큼 2분기엔 인상하지 않을 것이란 해석에 점차 무게가 실립니다.
그렇다면 다음 문제는 인상 횟수입니다. 이미 1.25%로 한 차례 올렸고, 1.5%도 시간문제일 뿐 인상이 확실시됩니다. 금리가 1.5%로 올라도 긴축이 아니라고 한 이 총재 발언을 비춰보면 1.75%까지 오를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 있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가 긴축에 더욱 속도를 내고 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더 높은 상태가 이어진다면 세 번 더 올려 올해 연말 2%까지도 가능하리란 전망도 있습니다.
2분기 통화정책 휴지기를 보낸다면 올해 남은 금통위는 7월과 8월, 10월과 11월 등 네 번입니다. 연말까지 2%를 올리려면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과 같은 연속 인상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번 연속 인상도 14년 5개월 만에 이뤄질 정도로 굉장히 이례적인 조치이고, 금리 수준이 1%대 중반으로 높아진 상황을 감안하면 연속 인상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한은이 4개월 19일 동안 금리를 세 번이나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코로나19로 급격히 내린 초저금리를 정상화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금리 인상 간격이 점차 벌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금통위가 2분기에 금리를 1.5%까지 인상한다면 연말 금리 수준도 달라집니다. 연내 추가 인상 시기와 횟수를 현 시점에서 판단하기엔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