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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부담에 철근 빼 단가 낮출수도…되레 중대재해 유발할까 우려"

■중대재해처벌법 첫날

대책없는 중기·중견들 작업 중단

워크숍 열고 설 연휴 앞당겨 시행

관리자 상시 고용으로 비용 증가

"무리한 정책에 줄도산 걱정" 지적


“건설 현장뿐 아니라 생산 공장까지…오늘부터 일손을 멈춘 중소기업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더 큰 문제는 비용입니다. 원청 대기업이 위험 요소를 감지해 작업 도중 중단시키면 하청 업체는 인건비만 날리게 됩니다. 시공 업체가 항복 선언을 하고 나와버리면 자재상뿐 아니라 장비 업체들도 다 돈을 못 받게 되고 결국 연쇄 부도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날인 27일 대형 건설사가 시공 중인 경기도 고양시의 한 건설 현장이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




27일 박길수 한국고소작업대임대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 첫날 꽁꽁 얼어붙은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이른바 ‘시범 케이스’인 ‘중대재해처벌법 1호 기업’이 되지 않기 위해 대기업은 물론 중소·중견기업들도 잔뜩 위축된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라도 문제가 생기면 중기의 경우는 연쇄 충격파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현대건설을 비롯해 대우건설·DL이앤씨 등은 이날 현장을 모두 중단시키고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워크숍을 여는가 하면 휴일 연휴를 당기고 연장하는 등의 비상 조치를 취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기업에 비해 준비가 상대적으로 덜 된 중소기업의 경영자들 사이에서는 “교육시키고 안전 점검을 한다고 해서 사고가 안 난다고 보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결국 재수 없으면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적지 않다.

무리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중기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 준수를 위해서는 관리자 등 상시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이 비용이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한 금속 제조 업체 대표는 “30명당 관리자 1명을 두게 되면 결국 인건비 등 비용이 오른다”며 “안전관리자가 현장에 들어와서 평상시 하던 작업을 중단시키니 작업 능률도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미 발주를 받은 계약의 경우 인건비·원재료 등이 오른다 해도 납품 단가가 조정되기 않기 때문에 고스란히 중기가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오너가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모든 권한이 오너에게 집중된 중기의 특성상 리스크로 확대돼 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성장 산업 분야의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차전지 분야는 물론 소재 분야 중견기업이나 태양광·풍력 등 신규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성장 기업의 경우 자칫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인한 비용 추가 리스크가 글로벌 경쟁력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기업의 비용이 상승하면 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와 같은 대형 사고가 재연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사 금액이 올라갈 경우 발주처는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찾게 되고 이 경우 결국 하청 업체들에서는 철근 하나라도 빼서 단가를 낮추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소 건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열악한 하청 업체의 경우 비용을 줄이기 위해 규격에 맞지 않는 제품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져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사실상 중대재해유발법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중대 재해 사고의 복잡성을 감안해 사례별로 구체적인 면책 기준을 명시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채희대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원은 “중소기업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경우가 다수”라며 “지방고용노동청, 지방 중소벤처기업청을 비롯한 현장 지원 기관을 중심으로 찾아가는 설명회와 간담회를 열고 중소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현황, 애로 사항을 확인하고 추가적인 지원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소기업의 다양성과 중대 재해 사고의 복잡성을 감안해 사례별로 구체적인 면책 기준을 명시적으로 밝혀 법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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