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는 지난 28일 김태주 세제실장 후임으로 윤태식 국제관리관을 임명했습니다. 윤 신임 실장은 국제금융국에서 주요 보직을 역임해온 터라 이번 인사가 이례적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통상 세제실 인사는 세제 업무의 전문성을 고려해 실 내 이동이 일반적입니다. 세제실장이 물러나면 빈자리는 실 내 국장이, 국장 공석은 실 내 과장이 맡는 식으로 인사가 맞물려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세제실의 한 과장급 인사는 “가장 윗선의 인사가 틀어진 것인데 그간의 관례를 통째 바꾸겠다는 홍남기 부총리 의지가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고 했습니다.
이번 인사에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습니다. 작년에 세제실이 예상한 세수보다 더 걷힌 세금이 6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자 책임을 묻기로 한 겁니다. 홍 부총리는 특히 세제실의 폐쇄적 인사 문화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칼을 빼들었습니다.
다만 뒷말이 무성합니다. 지난해 국세 수입 전망치를 담은 예산안을 작성할 때 최종 책임자는 홍 부총리였습니다. 실무 조직에 책임을 넘기면서 본인의 잘못을 가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세제실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세출예산에 세수 추계를 맞추는 관행이 더 문제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추가 세수 전망치가 클수록 여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지출 요구가 커질 수 있는 점을 의식해 세수를 보수적으로 추계했다는 겁니다. 특히 홍 부총리가 수장을 맡으면서 세출을 의식해 세수를 추계하는 관행이 굳어졌다는 말도 나옵니다. 세제실에 근무했던 한 국장급 인사는 “수입에 따라 지출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지출을 보고 수입을 조절하는 본말전도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예산실 출신의 홍 부총리가 3년간 자리를 지키는 사이 세제실이 눈치를 보는 경향이 짙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초과 세수’의 책임을 따질 때 이 같은 조직 문화를 방치한 홍 부총리 책임을 함께 짚어야 한다는 겁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기재부로서는 초과 세수 규모가 클수록 정치권 압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터라 세금이 더 들어올 게 예상되더라도 전망치를 고쳐 잡기 쉽지 않다”면서 “말 못할 사정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세제실만 총대를 메게 됐다”고 토로했다.
초과세수 상당 분이 집값 인상으로 발생한 것을 감안하면 세제실의 미숙함을 탓하기는 더 어려워 보입니다. 일례로 국세청의 2021년 11월 기준 세목별 국세수입 실적 자료에 따르면, 본예산 대비 실적 증가율이 가장 높은 세목은 양도소득세였습니다. 기재부는 ‘2021년 본예산’에선 지난해 양도세수를 16조8857억원으로 예상했는데 지난해 11월말까지 34조3761억원이 걷혀 17조4904억원이 더 많았습니다. 그간 정부는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 자신했는데 세제실이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세금이 더 걷혔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기재부 내부에선, 세수 추계의 근간이 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나 물가 상승률 모두 오차가 컸는데 “세제실에만 책임을 묻는 게 야속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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