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네이버·카카오 등을 겨냥해 내놓은 온라인 플랫폼 불공정거래 규제가 자칫 성장 스타트업을 고사시킬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시장 지배적 지위를 확보한 네이버 등 대형 플랫폼과 달리 배달의민족과 같은 플랫폼은 상대적으로 경쟁 기업에 쉽게 따라잡힐 수 있어 공정위 규제가 1등 사업자의 성장에 족쇄를 채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1,700여 개 스타트업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및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심사 지침(플랫폼 심사 지침)’에 관한 반대 의견을 공정위에 전달했다. 지난달 6일 발표된 플랫폼 심사 지침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행위가 현행 공정거래법상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이나 불공정거래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심사할 때 적용된다.
코스포는 의견서에서 “심사 지침 제정(안)의 취지와 달리 성장하는 스타트업에 무분별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 스타트업의 도태를 초래하고 기존 지배적 사업자의 지위를 더 고착화할 것”이라며 “혁신 성장을 해야 하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무분별한 규제로 혼란이 우려되는 만큼 이해 당사자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히 코스포가 문제 삼은 것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스타트업이 시장을 지배한다는 이유로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플랫폼 심사 지침에서 ‘무료 서비스라도 가치 교환이 발생하면 시장을 획정할 수 있다’고 규정했고 시장을 선점한 플랫폼 사업자에 영향력과 데이터가 집중될 수 있다고 봤다. 코스포는 혁신적 스타트업의 경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만큼 시장이 좁게 획정되고 경쟁 사업자 역시 존재하지 않아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잘못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확보한 시장 지배적 지위는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 쿠팡이츠의 맹추격을 받고 있는 배달의민족이 대표적 사례다.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배달의민족의 배달 앱 시장점유율은 56.3%로 1위지만 강남 3구에서는 쿠팡이츠 점유율이 4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고 거래 플랫폼 1위인 당근마켓은 GS리테일·롯데쇼핑·신세계 등 최근 해당 사업에 뛰어든 ‘유통 공룡’들과 경쟁해야 한다.
온라인 플랫폼 중개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온플법)이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에서 플랫폼 심사 지침이 각종 용어를 정의한 점도 추후 혼란을 줄 수 있는 요인이다. 심사 지침은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둘 이상 이용자 간 거래·정보교환 등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서비스’로 정의했다. 온플법이 규제 대상을 ‘거래 매개 서비스’로 한정한 것에 비해 광범위하다. 개인 간 거래(C2C) 플랫폼인 당근마켓의 경우 온플법 규제 대상은 아니지만 플랫폼 심사 지침상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이에 코스포는 플랫폼 심사 지침의 적용 대상을 네이버·카카오와 같은 ‘대형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플랫폼은 각 분야 1위 사업자인 스타트업과 달리 공고한 시장 지배력을 갖고 교차 네트워크 효과(플랫폼 이용자 수 증가가 편익에 영향을 미치는 것)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스포 관계자는 “초기 스타트업은 매출이 거의 안 나오는 상태에서 이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사업을 시작하고 있는데 이용자 수와 사용 빈도 등으로 규제를 한다면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공정위는 지난달 26일까지 심사 지침 제정안 행정 예고를 마친 뒤 각 업계에서 제출한 의견을 검토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원래 시장 지배력을 따질 때 현재 특정 업체의 지배력이 높더라도 진입 장벽이 낮아 언제든 경쟁 업체가 들어올 수 있는지 등 동태적 요인을 함께 판단한다”며 “플랫폼 심사 지침이 초기 스타트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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