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000720)이 2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지난달 HDC현대산업개발(294870)의 아파트 붕괴 사고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맞물리면서 리스크가 높아진 건설사들에 대한 채권시장의 투자 기피 현상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오는 15일로 예정된 회사채 수요예측 계획을 철회했다. 2000억 원에서 최대 4000억 원을 조달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를 상환하고 여유 자금을 비축하려 했으나 미매각 우려가 커지자 계획을 연기하고 일단 시장을 관망하기로 한 것이다. 현대건설은 이달 만기가 돌아오는 29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등은 보유 현금으로 상환할 예정이다.
현대건설이 대형 증권사 4곳을 주관사로 선정해놓고도 회사채 발행을 전격 연기한 것은 건설채에 대한 시장 분위기가 최근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기에 접어들며 회사채 투자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HDC현대산업개발의 아파트 붕괴 사고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더해져 위험 회피 심리가 강한 채권 투자자들이 건설 업체에 대해 잇따라 지갑을 닫고 있다.
실제 실적이 떨어지거나 영업 환경이 악화하는 등 부정적 이슈가 발생한 회사나 업종은 과거 발행한 회사채 금리가 유통시장에서 급등하며 가격이 크게 떨어진다. 현대건설도 민평금리(민간 채권 평가사가 평가한 회사의 금리)가 1년 만에 1.180%에서 최근 2.867%(3년물 기준)로 두 배 넘게 뛰었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고를 낸 HDC현대산업개발뿐 아니라 다른 건설사들도 언제든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는데 건설업 경기 하강설까지 제기되니 보수적인 채권 투자자 입장에서는 선뜻 나서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현대건설보다 신용도가 낮은 HDC현대EP(A-), 롯데건설(A+) 등 중대형 건설사들도 지난달 회사채 발행 계획을 잇따라 철회한 바 있다.
신용도가 AA 등급이고 1군 건설사 도급 순위 2위에 올랐던 현대건설이 회사채 발행을 미루면서 10일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 나서는 한화(000880)건설(A-)의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됐다. 한화건설은 발행금리를 최대 연 3.7% 안팎(2년물 기준)으로 높이는 한편 투자자들을 상대로 중대재해 방지를 위한 대표이사 직속의 안전 환경 관리 조직 확대 등을 적극 설명해 악화된 시장 상황을 돌파할 계획이지만 1200억 원의 물량 중 일부 미매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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