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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의 아트레터]중세 태피스트리·18세기 로코코미술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되기까지

메트로폴리탄, 월트 디즈니 주제로 첫 기획전

기업가·아티스트로서 다재다능한 월트 디즈니

고전서 영감얻은 디즈니 작업의 100년史 전시

디즈니의 1991년작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를 위해 피터 J.홀이 그린 컨셉 드로잉. / Walt Disney Animation Research Library ⓒ Disney




현재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는 월트 디즈니의 전시 ‘Inspiring Walt Disney: The Animation of French Decorative Arts’ 가 한창이다. ‘월트 디즈니’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20세기 문화의 아이콘이자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피노키오, 판타지아, 덤보, 신데렐라 등 지금까지 사랑받는 숱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과 프랑스 장식미술의 영향 관계를 되짚었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디즈니와 그의 스튜디오를 기리기 위해 전시를 기획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단순히 디즈니의 작업들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디즈니 영감의 원천인 18세기 로코코 장식 예술품들을 동시에 전시해 한 세기를 관통한 디즈니의 철학과 작업 과정을 심도 있게 보여준다. 전시장에 놓인 로코코 장식 예술품들은 과거 제한된 상류층만 접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디즈니가 추구한 애니메이션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전시는 연대기 순으로 1930년대 디즈니가 제작한 초기작부터 최근의 애니메이션과 장식 예술품들이 아카이빙 형식으로 기획돼 있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기획해 지난해 12월10일부터 오는 3월6일까지 개최하는 월트 디즈니 기획전 'Inspiring Walt Disney: The Animation of French Decorative Arts'의 전경. /Photo by Paul Lachenauer, Courtesy of The Met. ⓒ Disney


16살의 어린 월트 디즈니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갈 때쯤 적십자사의 구급차 운전병 자격으로 프랑스를 처음 방문했다. 디즈니는 몇 달 동안 프랑스에 머물면서 유럽 아동 문학, 일러스트레이션, 가구 미니어처 등 다양한 예술품을 접했고 매료됐다. 미국으로 돌아온 디즈니는 만화가로 살겠다고 다짐했고, 1923년 디즈니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이후로도 디즈니는 유럽을 자주 여행하며 고딕과 로코코 양식에 기반한 약 355개의 일러스트 책과 예술품을 수집했다. 이같은 디즈니의 컬렉션은 유럽의 시각 예술 전통을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미국식 장르로 전환하는 시발점이자, 현재까지 이어지는 디즈니 스튜디오 철학의 기반이 되고 있다.

전시장 초입에는 디즈니 스튜디오의 초기 작품인 ‘어리석은 심포니’ 시리즈인 ‘시계 상점 (The Clock Store)’과 ‘중국 상점 (The China Shop)’ 스케치들이 놓였다. 18세기 유럽의 저명한 도자기 공방인 마이센(Meissen), 세브레(Sevre)와 20세기 초 디즈니 스튜디오 애니메이터들이 협업해 사물에 생기를 불어 넣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초창기 디즈니 스튜디오의 작품은 흑백 화면에 소리도 없을 뿐더러, 캐릭터들의 감정이 지금처럼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기획해 지난해 12월10일부터 오는 3월6일까지 개최하는 월트 디즈니 기획전 'Inspiring Walt Disney: The Animation of French Decorative Arts'의 전경. /Photo by Paul Lachenauer, Courtesy of The Met. ⓒ Disney


전시 중반부로 갈수록 우리에게 익숙한 디즈니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1937년 공개된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에는 초창기 작품과 달리 화려한 색감이 입혀졌고, 각 캐릭터들도 이전보다 훨씬 진보적으로 표현됐다. ‘동화’라는 장르 탄생에 기여한 18세기 작가 찰스 페럴(Charles Perrault)의 소설을 각색한 1950년작 ‘신데렐라(Cinderella)’와 1959년작 ‘잠자는 숲속의 공주(Sleeping Beauty)’의 과슈 드로잉, 스케치들도 함께 선보였다.

전시된 과슈드로잉들은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의 일부라기보다는 하나하나 독립된 예술품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고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신데렐라’의 제작 초기에는 18세기 로코코 의복 양식에 초점을 맞췄으나 당시의 애니메이션 기술로는 극도로 장식적인 로코코 양식을 다 표현하지 못해 19세기 양식으로 조정했다는 비하인드스토리가 흥미롭다. 전시된 ‘신데렐라’의 드로잉들은 실제 화려하고 디테일한 로코코 의복 양식과 달리 간소화된 표현을 보여준다.



디즈니의 1950년작 애니메이션 '신데렐라(Cinderella)'를 위해 매리 블레어(Mary Blair)가 그린 컨셉드로잉. /Walt Disney Animation Research Library ⓒ Disney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각본은 15세기 성에서 벌어지는 로맨스에 영감을 받았다. 시각적으로는 메트 클로이스터 (The Met Cloisters)의 주요 컬렉션인 ‘유니콘 태피스트리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도 한 점이 걸렸다. 앙리 루소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이 작업은 숲속 내부에 앉아 있는 양치기 소년과 주변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양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중세 후기 제작된 이 태피스트리에는 공간의 원근법이 적용되지 않아 한 시점에 모든 풍경이 평평하게 담겨 있다. 이러한 특징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위한 배경 연구 드로잉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배경은 중세 후기에 직물로 제작된 장식미술품 ‘유니콘 태피스트리 시리즈’에서 영감을 얻었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기획해 지난해 12월10일부터 오는 3월6일까지 개최하는 월트 디즈니 기획전 'Inspiring Walt Disney: The Animation of French Decorative Arts'에 이 테피스트리와 함께 배경연구 드로잉이 전시 중이다. /Photo by Paul Lachenauer, Courtesy of The Met. ⓒ Disney


전시 후반에서는 1991년 공개된 ‘미녀와 야수 (Beauty and the Beast)’와 관련된 로코코 장식예술품과 이를 반영한 디즈니 스튜디오의 컨셉 드로잉들을 나란히 보여준다. ‘미녀와 야수’에 등장하는 사물 캐릭터인 촛대 르미에, 시계 콕스 워스, 주전자 미세스 팟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가 인상적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들 사물은 모두 18세기 로코코 양식의 장식 예술품에서 탄생했다. ‘미녀와 야수’에서는 로코코 미술이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로 변형되는 과정이 이전보다 더 섬세하게 고려됐다. 피터 홀 (Peter Hall)이 그린 시계 캐릭터 콕스 워스의 컨셉드로잉을 보면 알 수 있다. 시계를 의인화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표정, 복식, 비례, 색감 등에 대한 디즈니 스튜디오의 고민 사항이 드로잉에 그대로 나타난다.

디즈니 스튜디오는 애니메이션 제작뿐만 아니라 테마파크 설립에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전시장 마지막에는 디즈니성(城) 제작 과정에 관한 아카이빙도 확인할 수 있다. 16세기 프랑스 루아르 계곡의 성과 19세기 독일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건축 디자인에 영감을 받은 이 디즈니성은 현재 전 세계 12개의 디즈니 테마파크와 디즈니 영화 인트로에서 볼 수 있다. 전시는 3월 6일까지. /뉴욕=엄태근 아트컨설턴트



※필자 엄태근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뉴욕 크리스티 에듀케이션에서 아트비즈니스 석사를 마친 후 경매회사 크리스티 뉴욕에서 근무했다. 현지 갤러리에서 미술 현장을 경험하며 뉴욕이 터전이 되었기에 여전히 그곳 미술계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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