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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물도 한국이 만들면 달라”…넷플릭스 장악한 K콘텐츠의 힘

[‘지금 우리 학교는’ LA 더빙 현장 가보니]

좀비물에 사회적 메시지 담은 게 인기 비결

넷플릭스 올해 한국 컨텐츠 25편으로 확대

한인 성우 “K컨텐츠 인기에 조국에 자부심”

10일(현지 시간) 넷플릭스 LA 더빙센터에서 성우 해리슨 후(왼쪽)와 빅토리아 그레이스가 ‘지금 우리 학교는’의 더빙 작업을 하고 있다. /LA=이경운 연수특파원




한국이 만든 ‘K좀비’가 미국을 점령했다. 올해 넷플릭스 최고 화제작 ‘지금 우리 학교는’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공개 이후 단기간 글로벌 시장에서 기록한 인기는 이미 ‘오징어 게임’을 넘어섰다. 넷플릭스가 반한 ‘K콘텐츠’의 매력을 미국 문화의 심장 로스앤젤레스(LA)에서 직접 확인해봤다.

10일(현지 시간) 방문한 넷플릭스 LA 더빙센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였다. ‘오징어 게임’을 상징하는 이 도형들은 센터 곳곳에 숨은그림찾기처럼 그려져 있다. 자신들이 만든 최고 인기 드라마를 기념하는 넷플릭스만의 방식이다. 하지만 넷플릭스도 오징어 게임이 나오고 5개월 만에 새로운 초대형 한국 히트작이 나오리라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넷플릭스 LA 더빙센터 곳곳에 위치한 오징어 게임을 상징하는 ‘○△□’ 그림./LA=이경운 연수특파원


주동근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지금 우리 학교는’의 흥행은 각종 지표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8일 공개된 해당 드라마는 일주일 동안 누적 시청 시간 1억 2479만 시간을 기록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오징어 게임(6319만 시간)의 약 2배에 달한다.

특히 전 세계 94개국에서 상위 10위권 안에 오른 것도 돋보인다. 특정 지역에 편중된 인기가 아닌 지구촌 전역에서 통하는 콘텐츠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좀비물이라는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고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먹히고 있다는 것이 빈말이 아니다.

현장에서 만난 넷플릭스 담당자들도 “한국이 만든 좀비물은 그냥 좀비물과 다르다”고 치켜세웠다. 넷플릭스 LA 더빙센터의 존 데미타 더빙총괄감독은 “‘지금 우리 학교는’ 전에도 미국에서는 많은 좀비 영화가 있었다”며 “그런데 한국에서 만든 이번 드라마는 전작들과 달라서 크게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인 좀비물처럼 주인공이 좀비와 싸우는 단순한 선악 구조가 아니라 학교를 배경으로 각종 폭력과 따돌림, 빈부 격차 등을 학생들의 좀비와의 투쟁에 함께 담아내 신선하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LA 더빙센터에서 ‘지금 우리 학교는’ 더빙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유리 너머로 실제 녹음이 진행되는 가운데 디렉터가 모니터를 통해 더빙 음성과 화면의 싱크를 맞춘다./LA=이경운 연수특파원


더빙에 참여한 성우도 좀비물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스토리텔링을 ‘K콘텐츠’의 인기 이유로 꼽았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미국 더빙에서 ‘온조’ 역할을 맡은 성우 빅토리아 그레이스는 이날 간담회에서 “이 드라마를 단순한 좀비물이라고 생각하는 시청자들은 없을 것”이라며 “등장인물 각각이 품고 있는 스토리의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레이스는 오징어 게임과 관련해서는 “배우로 일하면서 이런 스토리텔링은 본 적이 없었다”고 극찬했다.

인터뷰와 함께 진행된 더빙 시연 작업에서는 언어적 한계를 뛰어넘고 콘텐츠의 활용성을 극대화하는 넷플릭스만의 강점을 알 수 있었다. 그레이스와 함께 ‘청산’ 역을 맡은 성우 해리슨 후가 자리했는데 전문 더빙디렉터의 감독하에 작업이 진행됐다. 드라마에 액션 장면이 많아서 대사 사이에 들어가는 호흡 소리도 중요한데 모두 철저히 계산된 각본에 따라 녹음이 됐다. 후는 “좀비물이라 달리고 싸우는 장면이 많았다”면서도 “디렉터가 철저하게 준비를 해오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 더빙 작업에 참여한 존 데미타(왼쪽부터) 더빙총괄감독, 성우 빅토리아 그레이스와 해리슨 후, 김경석 디렉터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LA=이경운 연수특파원


‘지금 우리 학교는’의 더빙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한국인 디렉터가 참여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더빙 작업도 담당했던 김경석 디렉터는 인터뷰에서 “작업자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말은 영어로 더빙하기 쉬운 언어가 절대 아니다”라고 밝혔다. 특히 문화적 차이도 크기 때문에 한국어를 할 수 있는 김 디렉터의 존재는 더빙 작업에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문화적으로 다른 점 때문에 조율에 힘든 부분도 있었다”며 “감정 라인에 있어서는 배우들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했다”고 설명했다.

오징어 게임에 이어 ‘지금 우리 학교는’으로 언어적·문화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음을 증명한 만큼 넷플릭스와 한국의 협업은 앞으로 더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올해 넷플릭스가 공개할 예정인 한국 작품은 총 25편 이상으로 지난해(15편)와 비교했을 때 최소 10개의 작품이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딛고 ‘K콘텐츠’의 위상도 세계시장에서 더 커질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한인인 그레이스는 “지난 2013년부터 BTS를 좋아했다”며 “한인으로서 K콘텐츠의 위상이 커지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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