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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핵심' 크립톤 절반 러·우크라産…美제재 땐 생산·수출 직격탄

■우크라發 원자재 쇼크…공급망 비상

희귀소재 네온·제논 등 러·우 의존 높아 공정 차질 가능성

흑해산 원유·LNG 공급망도 흔들…에너지값 폭등할 수도

밀·옥수수 등 곡물까지 들썩…식품기업도 사태 예의주시

주요 기업들 우크라이나 주재원 철수 완료





우크라이나 동부전선에 감도는 전운이 짙어지며 글로벌 제조업을 지탱하는 공급망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전쟁이 터질 경우 특히 반도체와 자동차·가전 등 수출 한국의 핵심 제품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수년간 이어진 팬데믹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고리가 약해진 가운데 우크라이나 사태가 세계경제를 뒤흔드는 트리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양국 간 무력 충돌은 인근 지역을 둘러싼 유통망을 직접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물론 미국의 대(對)러시아 제재를 부추겨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대한 한국의 수출입이 모두 ‘올스톱’될 수 있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공장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일어나면 정상적인 가동이 어려워진다.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한 소재인 네온과 크립톤·제논 등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연방에서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청의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해 한국에서 수입한 네온 98.2톤 가운데 우크라이나산은 23.2톤, 러시아연방산은 4.9톤으로 전체의 28% 이상을 차지했다. 반도체 식각 과정에서 주로 활용하는 크립톤과 제논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연방이 주 수입국인 만큼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지난해 한국이 수입한 크립톤 69.3톤 가운데 러시아(11톤)와 우크라이나(24.6톤) 물량은 51%를 뛰어넘었다. 이 물량이 모두 반도체에 투입되는 것은 아니지만 필수 소재 수입 물량의 30~50%가 특정 지역에 집중된 상황은 기업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희귀 가스로 분류되는 네온은 반도체 집적 재료를 원하는 패턴으로 그려내는 노광 공정(포토리소그래피)에 필요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거대한 네온 포집기가 우크라이나 철강 공장 인근에 있어 불화아르곤 공정의 부상과 함께 우크라이나산 네온이 불티나게 팔렸다”며 “지난 2015년에 우크라이나 홍수 등을 겪은 뒤 수입선을 다변화해왔지만 여전히 네온을 많이 사용하는 노광기도 배치돼 있어 반도체 생산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미국 백악관은 자국 반도체 기업들에 반도체 소재 공급망을 다변화할 것을 권고했다. 자국의 경제제재에 반발해 러시아가 핵심 소재의 수출을 막을 염려 때문이다. 이달 초 반도체 재료 시장조사 회사인 텍쳇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에서 반도체 제조에 사용하는 네온은 90% 이상이 우크라이나에서 수입되고 있고 팔라듐의 35%는 러시아에서 들여온다. 글로벌 반도체 쇼티지(수급 불균형)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쏟아붓는 기름’이 될 우려가 높다.

러시아 흑해와 사할린에서 원유를 수입해오는 정유 업계도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국내 주요 정유사들은 전체 원유 수입 물량의 10~15% 수준을 러시아에서 가져오고 있다. 대치가 전쟁으로 번질 경우 대체 수입선을 시급히 확보해야 하고 원유 가격도 더욱 올라 수익성이 떨어진다. 여기에 세계 1위의 천연가스 수출국인 러시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들썩일 가능성도 높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90달러를 웃돌며 7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시 12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갈등 장기화로 배럴당 90달러를 상회하는 유가 흐름이 고착화하면 물가 압력의 빠른 둔화는 기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특히 국내와 같은 원유 수입의존도가 절대적인 국가의 경우 경제적 악영향이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현지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타격이 더 클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에 TV 공장을, LG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루자에서 TV와 생활 가전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현대차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공장이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러시아 내 세탁기·냉장고 등 주요 가전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공장은 현지 판매용으로 가동되고 있지만 전쟁이 나면 소비심리가 위축돼 수요가 크게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에 진출한 국내 식품 기업들 역시 수출 및 현지 생산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하고 있다. 오리온은 현지에서 2개 공장을 가동해 초코파이 등 과자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오리온 관계자는 “대부분의 물량을 수출이 아닌 현지에서 생산해 당장의 공급망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고 답했다.

세계적인 곡창지대로 꼽히는 우크라이나가 전쟁에 휘말리면 밀·옥수수 가격이 올라 세계 물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식품 업계 관계자는 “원맥 세계 생산량의 20~30%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나온다”며 “사태 장기화로 구매가 어려워지면 미국이나 호주 등으로 구매처가 몰릴 수 있어 원맥가 상승 등의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주요 기업들은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되는 우크라이나에 머물고 있는 주재원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거나 귀국하도록 조치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우크라이나 판매 법인에서 근무하는 주재원 10명 내외를 여행 경보 4단계 발령 직후 귀국하도록 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현대코퍼레이션·한국타이어 등도 우크라이나에 머물던 주재원 전원을 이날까지 철수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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