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3.1%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한은이 3%대 물가 전망치를 내놓은 것은 지난 2012년 4월 이후 10여 년 만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원자재 시장이 요동치면서 물가는 오르는데 경기는 침체 국면으로 접어드는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한은은 24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1.25% 동결한 후 발표한 수정 경제 전망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1%로 제시했다. 지난해 11월에 밝힌 기존 전망치(2.0%)보다 1.1%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1년 전인 지난해 2월 전망치(1.4%)보다는 무려 두 배 넘게 올랐다. 한은은 내년 물가 전망도 기존 1.7%에서 2.0%로 올려 잡았다.
이주열 총재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월 전망 경로보다 높아져 상당 기간 3.0%를 크게 상회할 것”이라며 “연간으로 3.0%대 초반을 나타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총재는 3개월 만에 물가 전망치가 대폭 상향된 배경에 대해 “최근 짧은 기간에 우크라이나 사태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물가 상승 확산 정도가 예상보다 크고 광범위하게 나타났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면전을 벌일 경우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올라 향후 물가에 상방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경제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물가 인상까지 덮치며 한국이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장용성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보고서에서 “고용이 부진하면 물가도 하락하던 과거와 달리 코로나19 위기를 겪고 회복세로 접어들었지만 고용 회복이 지연되면서 물가도 오르고 있다”며 “고용 부진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진행되면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는 상황에서 오미크론 변이 확산까지 장기화할 경우 소비와 투자 회복에 찬물을 끼얹고 성장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2%에서 3.0%로 하향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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