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가 9억 원을 기준으로 대출 규제를 강화한 지 2년여 만에 서울 아파트 거래 10건 중 6건 이상이 대출 제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과 동떨어진 대출 규제로 평범한 소득의 실수요자들은 내 집 마련이 점점 어려워지는 반면 현금 부자들은 대출 규제와 상관없이 좋은 집을 독식하는 양극화가 더해지고 있다.
1일 서울경제가 지난 2019년 12·16대책 이후인 2020년 1월부터 올해 2월 28일까지 신고된 서울 전용면적 59㎡ 이상 아파트 거래를 전수 분석한 결과 대출 규제 영향권을 벗어난 9억 원 이하 아파트 거래 비중은 2020년 상반기 70.4%에서 지난해 하반기 39.7%로 급감했다. 최근 6개월(2021년 9월~2022년 2월)로 보면 이 비중은 37.3%로 더욱 낮아졌다. 최근 거래 10건 중 6건 이상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에 대한 추가 규제를 받은 것이다. 이는 결국 실수요자들이 주로 찾는 평형대의 주택 가운데 추가 대출 제한 없이 이뤄지는 거래가 전체 거래의 3분의 1 수준까지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앞서 정부는 2019년 12·16정책에서 시가 9억 원 초과~15억 원 주택의 경우 9억 원 초과분에 대한 LTV를 20%로 제한했다. 15억 원을 초과하면 주택담보대출 자체를 금지했다.
반면 ‘15억 원 초과’ 초고가 아파트들의 거래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서울에서 전용 59㎡ 이상 거래 중 15억 원 초과 비중은 2020년 상반기 9.4% 였지만 하반기 15.6%로 늘어난 뒤 지난해 하반기에는 23.0%까지 치솟았다. 이 역시 최근 6개월로 시점을 옮겨보면 26.1%로 지난해 하반기보다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집값 상승 속 각종 규제로 실수요층의 거래 비중은 급감하고 있지만 초고가 거래는 별 영향을 받지 않고 되레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KB부동산의 2월 월간 주택 통계를 보면 서울 한강 이남 11개구의 아파트 평균 가격은 15억 1210만 원으로 대출 금지선을 돌파했다. 강북 14개구도 10억 487만 원으로 10억 원을 넘겼다. 평균적인 수준의 집이라면 대출 규제를 피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고소득 월급 소득자라도 집을 사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시가 10억 원 주택의 경우 현재 대출 규제에서는 3억 8000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각종 거래 비용과 세금을 제하더라도 6억 2000만 원의 현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올 들어 강화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까지 더하면 소득이 적은 직장인들의 선택지는 경기권에서 집을 구매하거나 서울 내에서 전월세로 사는 방법뿐이다.
전문가들은 현행 대출 규제가 주거 양극화를 부추기는 만큼 이를 완화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12억 원대인 만큼 9억 원이라는 규제 기준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현 규제에서는 미리 대출을 받아 집을 구매했던 사람들만 승리자가 되는 구조”라며 “다만 거래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대출 규제만 풀 경우 수요가 증폭될 수 있기 때문에 거래세를 낮춰 시장에 매물을 유도하는 정책을 패키지로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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