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강력한 경제 제재에 러시아 증시와 화폐가치가 폭락하는 등 러시아 금융시장이 메가톤급 충격을 받았다. 시장 변동성이 지나치게 커지자 러시아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이머징마켓(EM)지수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탈러시아’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겁 없이’ 반등에 베팅한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손실을 면하지 못하게 됐다. 반면 증권가에서는 러시아의 퇴출이 현실화하면 해당 자금 중 일부가 국내 증시로 흘러들어와 온기를 불어넣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2일 개장을 앞둔 시장에 기대감과 공포감이 어지럽게 뒤섞인 모양새다.
로이터통신은 MSCI가 러시아를 EM지수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1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통신은 디미트리스 멜라스 MSCI 인덱스 리서치 책임자 겸 인덱스 정책위원회 위원장이 “고객과 투자자가 시장에서 거래할 수 없다면 러시아 주식을 계속 포함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서방이 러시아 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핵폭탄급 제재를 가하면서 러시아 금융시장 붕괴가 임박한 만큼 투자 가능 시장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미국 달러 대비 루블화 가치는 지난달 28일 외환시장에서 전 거래일 대비 28% 폭락했다. 이에 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9.5%에서 20%로 대폭 올리는 등 시장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기준금리를 연 20%로 끌어올린 것은 러시아 역사상 처음이다. 종전 최고 기록은 크림반도 병합 후 서방의 경제 제재가 가해진 뒤인 지난 2014년 12월 연 17%였다.
채권 지수의 경우 실제 러시아가 배제됐다. 2월 28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JP모건은 러시아를 자사 ESG 글로벌 신흥시장 국채지수(GBI-EM, 현지통화채권), ESG 신흥시장채권지수(EMBI, 달러 채권)에서 조만간 제외할 예정이다.
러시아 증시는 급락을 거듭했다. 지난달 중순께부터 하락을 시작한 RTS지수는 24일에는 39.44% 폭락한 후 25일에는 26%가량 반등했다. 그러나 올 들어서만 RTS지수는 41.28% 폭락한데다 스위프트 제재가 나오면서 다급해진 러시아 중앙은행은 2월 28일(현지 시간)부터 이날까지 증권시장을 정지하는 극약 처방을 내린 상태다.
러시아 현지 주식시장은 닫았지만 해외에 상장된 러시아에 투자하는 금융 상품들은 투자자들의 이탈이 거세지면서 폭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 뉴욕증시에서는 2월 28일(현지 시간) 러시아 상장 종목 중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을 추종하는 반에크 러시아 상장지수펀드(ETF)가 30.45% 추락했고, 아이셰어즈 MSCI 러시아 ETF(ERUS)도 27.92% 급락했다. 두 상품은 우크라이나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진 지난달 종가 기준 각각54.73%, 53.73% 크게 떨어지며 주가가 반토막났다.
국내 증시에서 유일하게 러시아에 투자할 수 있는 ‘KINDEX 러시아MSCI(합성)’ ETF의 상황도 좋지 않다. 해당 ETF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한 지난달 21일부터 2월 28일 종가까지 36.91% 하락했다. 같은 기간 개인은 공포심이 커지는 와중에도 해당 ETF를 267억 원어치 순매수하며 러시아 증시 반등에 무게를 뒀다. 특히 지난달 25일 하루 거래량은 178만 5532주로 2017년 상장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고 1월 하루 평균 거래량(4004주) 대비 4만 4494% 급증하는 등 말 그대로 투자 광풍이 불었다. 개인의 매수세가 과열되면서 해당 ETF의 괴리율은 2월 28일 기준 30%를 넘어섰다. 이는 적정 가치보다 비싼 가격에 상품이 거래되고 있다는 의미로 추가 하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증권가에서는 러시아 경제가 초토화되자 MSCI의 러시아 지수 제외 등 글로벌 큰손들의 러시아 ‘엑소더스(대탈출)’ 자금 중 일부가 국내로 들어올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MSCI EM지수에서 러시아가 퇴출되면 같은 지수에 편입돼 있는 한국의 비중이 늘어나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러시아는 MSCI EM지수 내 비중은 약 3.3%인데 지수에서 퇴출되면 국내 증시에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외국인 수급이 유입될 것”이라며 “MSCI EM 추종 자금은 약 1조 8000억 달러(약 2200조 원)이며 한국의 비중은 약 12%로 러시아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기존 비중으로 분배할 경우 대략 70억 달러(약 8조 4000억 원)의 외국인 자금 유입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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