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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게임에 푹 빠진 사우디 왕세자…넥슨·엔씨에 3조 '돈 폭탄'

한달만에 넥슨 4대·엔씨 2대주주 등극

탈(脫)석유 위해 신산업 투자 종횡무진

무서운 매입 속도에 경영권 분쟁 우려도

업계 "저점매수 통한 차익실현 노린듯"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연합뉴스




올해 1월 게임업계 ‘큰 손’으로 깜짝 등장한 사우디 국부펀드가 넥슨·엔씨소프트(036570)(NC) 주식 매입에 쓴 돈이 3조원을 넘어섰다. 너무 빠른 매입 속도에 경영권 분쟁 우려까지 솔솔 확산되는 모양새다. 다만 업계에서는 사우디가 두 회사의 주식을 저점에 매수하기 위해 대규모 지분 투자를 단행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K게임에 한달동안 뿌린 돈만 3조…게임 덕후 왕세자의 ‘덕업일치’?


넥슨 판교 사옥


12일 업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Public Investment Fund(PIF)’가 넥슨재팬 및 엔씨소프트(NC) 주식 매입에 쓴 금액이 3조 원을 넘어섰다. PIF는 올해 1월 말 넥슨에 1조 원 규모(지분율 5.02%)의 지분 투자를 한 것을 시작으로 넥슨과 엔씨 주식을 지속적으로 매입 중이다.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넥슨에는 누적 2조1068억 원을 투입해 4대 주주(지분율 7.09%)로 올라섰고, 엔씨에는 1조904억 원을 투자해 2대 주주(지분율 9.26%) 자리를 꿰찼다.

약 5000억 달러(617조 원) 규모의 기금을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PIF는 지난 2020년 말부터 액티비전 블리자드, 일렉트로닉아츠(EA), 테이크투 등 글로벌 게임사에 공격적으로 투자해왔다. PIF는 블리자드 매입 후 평가손실 30%를 넘기며 고전하다가, 지난 1월 마이크로소프트(MS) 인수 소식이 전해진 직후 극적으로 11억 달러 이익을 기록하며 주목받기도 했다.

공격적인 투자 배경에는 PIF를 이끄는 사우디 실권자 빈살만 왕세자가 있다. 왕세자는 지난 2017년 집권 시작 이래 석유 위주의 경제 구조를 탈피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PIF를 내세워 차세대 유망 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것. 실제 PIF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및 신재생에너지 기업 등의 주식 매입에 100억 달러(약 12조 원)의 자금을 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왕세자 본인이 자타공인 ‘게임 덕후’기도 하다. 왕세자는 비디오 게임 ‘콜 오브 듀티’의 팬이라고 언급하거나, “비디오 게임과 함께 자란 첫 세대”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등 게임에 대한 애정을 수 차례 표현해 왔다.

김택진 대표 지분율 바짝 추격… 경영권 분쟁 우려도




엔씨 판교 사옥


PIF는 두 회사 지분 투자를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PIF가 넥슨과 엔씨의 주요 주주로 올라서면서 두 회사의 경영권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 PIF가 2대 주주로 올라선 엔씨의 경우, PIF와 1대 주주 김택진 대표(지분율 11.9%)와의 지분율 차이는 2.6%포인트(p)까지 좁혀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PIF가 밝힌 투자 목적을 곧이곧대로 믿기엔 보유 지분율이 너무 높아 의구심이 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왕세자가 넥슨·엔씨 사들이기 시작한 시점인 올해 1월 말 ‘새비 게이밍 그룹(Savvy Gaming Group)’을 신규 설립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PIF는 이 그룹을 통해 스웨덴 e스포츠 업체인 ESL을 10억 달러에 인수했다. 사우디 측은 이 그룹을 “글로벌 선두 게임 및 이스포츠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장기적으로는 투자를 단행한 국내 게임사들 또한 이 그룹의 일원으로 편입하려고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업계 "경영권 관심은 없어 보여… 저점매수 노린듯"


SNK 대표작 ‘킹 오브 파이터즈’


다만 업계에선 PIF가 여태껏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한 적이 없는 만큼 현재로선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실제 왕세자가 경영권을 인수한 게임사는 코스닥 상장사였던 일본 게임사 SNK(950180) 하나 뿐이다. 이 또한 PIF가 아니라 본인 소유의 청소년 교육 재단인 MiSK를 통해 회사를 사들인 거였다. 지분 매입 목적도 재무적 투자가 아니라 산학협력 등을 통해 사우디 청년층에게 신기술 교육을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못박았다.

반면 엔씨와 넥슨의 경우 국내 굴지의 대형 게임사이지만 현재 주가가 저평가돼있다는 판단에 따라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특히 엔씨의 경우 고점 대비 주가가 반토막난 수준”이라며 “두 회사 모두 올해 다수 신작을 목표하고 있고 실적 개선이 예상되는 만큼 저점 매수를 통해 차익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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