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0조 원의 자산을 보유한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들의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영향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투자 기업과 5년 내 거래 관계 등이 있는 사람은 사외이사 및 감사 선임에서 반대하기로 했으며 이사회 출석률이 75%에 미치지 못하는 이사는 재선임 시 반대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이 올해 정기 주총을 앞두고 삼성전자(005930)와 네이버·대우건설(047040) 등의 이사 선임 및 이사 보수 한도 확대에 대거 반대한 것도 의결권 지침을 강화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14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최근 이 같은 내용들을 담아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 개정안을 의결했다. 기금운용위의 한 관계자는 “일부 지침은 기업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해 투자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강화했으며 일부 내용은 현실에 맞게 완화했다”고 설명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기업의 사외이사와 감사 선임 시 이해관계를 줄이기 위해 거래 관계가 있거나 지분을 투자한 기업에서 5년 이내 상근직으로 근무한 임직원은 주총에서 선임 안건에 반대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중요한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로 규정하고 실질적으로는 3년 이내 상근자에게 적용했는데 대폭 강화된 것이다.
이사회 결석이 잦은 인사도 다음 해 사내 혹은 사외 이사나 감사 선임에 반대하도록 했으며 ‘출석률 75% 미만’으로 명시했다. 기존에는 사외이사에 한해 이사회 출석률이 저조한 사람에 대해 재선임을 반대하도록 했는데 사내이사로 대상을 확대하면서 출석률까지 명시한 것이다. 기금운용위는 다만 ‘75% 출석률’이 이사회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재계 측 반대 의견을 수용해 불출석 사유 등을 주총 소집 공고 등에 공시하면 이를 고려한다는 방침이다.
국민연금은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이사 보수 한도와 보수 금액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기준을 담아 보수 금액이 경영 성과 등에 비추어 과다하면 해당 안건을 반대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이사의 보수 한도가 과도할 경우에만 반대했는데 이사들의 실질적인 보수 금액도 국민연금이 따져 의견을 내겠다는 것이다. 감사의 보수 한도는 감사의 독립성을 위해 일정 이상 수준을 유지하지 않을 경우 해당 안건에 반대하도록 지침을 개정했다.
강화된 지침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각 기업들의 주총 안건 검토 시 적용하게 돼 기업들의 경영 자율성은 적잖이 제약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금운용본부는 수정된 의결권 지침을 반영해 삼성전자와 네이버·대우건설·효성화학 등의 올해 주총 안건 일부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금운용본부는 네이버의 이사 보수 한도가 경영 성과 등에 비추어 과다하다고 지적하며 반대했으며 대우건설의 김재웅·이인석 이사 겸 감사 선임은 두 후보가 회사 측과 거래 관계에 있는 기업에서 상근직으로 일했다는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다. 효성화학은 이창재 이사 겸 감사 선임에 대해 회사와 이해관계가 있어 독립성이 훼손된다고 지적했고 이사 보수 한도와 보수도 회사의 규모나 경영 성과에 비해 과다하다며 찬성을 거부했다.
국민연금이 주총 의결권을 강화했지만 ‘보여 주기 식’에 그친다는 비판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이날 주총을 개최한 네이버는 국민연금의 이사 보수 한도 승인 반대에도 관련 안건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대우건설도 지난달 28일 이사 선임이 통과됐다. 국민연금이 16일 열릴 삼성전자 주총을 앞두고도 이사 8명 중 4명에 대해 이례적으로 반대하고 나섰지만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등의 선임안이 부결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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