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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서 재정기강 무너져…'윤석열표 재정준칙' 세워 돈풀기 막아야

[공약, 거품을 걷어내라]

한해 3~4차례 추경 편성 등

재원 배분 전략 완전히 실패

尹, 지출 효율화 방안 제도화

"예타 면제 개선" 목소리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연합뉴스




“재정의 기강이 무너졌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재정 운용에 대한 국내 전문가들의 평가다. 나라 부채가 1000조 원을 넘기고 적자 규모가 유례 없이 빠르게 커졌다는 것도 우려스럽지만 재정 운용 원칙이 실종돼 한 해 3~4차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도 누구 하나 문제 의식을 갖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오문성 한양여대 교수는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추경을 한다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재원 배분 전략에 완전히 실패했다”며 “전 국민 재난지원금 같은 무차별식 지원보다 효율적인 타깃형 지원 대책을 마련했다면 위기 탈출 속도도 더 빨랐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때도 재정지출의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8년 리먼쇼크와 2012년 남유럽 재정 위기를 연달아 겪으면서 두 정부 경제팀 모두 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 가능성을 집중 검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매파(재정확대론자)’ 관료들의 앞을 막아선 것은 재정 건전성 사수라는 절대 원칙이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기재부 관료는 “재정지출 확대가 논의의 테이블에 오를 때마다 ‘지금 정부가 빚을 늘리면 후대에 죄를 지는 것’이라는 원칙론 때문에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며 “만약 전 정부에서 재정 지출을 확 늘려놓았다면 코로나19 같은 ‘블랙스완(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에 대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재정을 언제까지 틀어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구 급감, 고령화, 산업구조 변화 등 급속한 경제 사회 구조 변동 속에 재정지출 수요가 확대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기 때문이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고령화 구조를 생각하면 앞으로 국가 채무 증가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어 속도를 늦추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재정 건전성이 중요하다는 국민들의 동의를 바탕으로 중장기적인 재정준칙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에 실패한 ‘한국형 재정준칙’을 대신할 ‘윤석열표 재정준칙’을 만들어 향후 무차별적 재정 확대에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윤 당선인의 공약집을 살펴보면 그 역시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부 출범 이후 혁신 과제 가운데 하나로 ‘국가 재정 관리를 위한 재정준칙 도입’을 제시했다. 중장기 재정 지속 가능성을 진단해 재정 혁신안을 마련한 뒤 5년 단위로 짜는 ‘국가재정운용계획’과 연계된 지출 효율화 방안을 제도화하겠다는 내용이다.

다만 이런 혁신안이 속도를 낼 수 있을지가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윤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새 정부 출범 이후 1년 안에 재정준칙을 마련하겠다’는 구상만 공개한 상태다. 청와대 이전 공약을 각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속도전으로 밀어붙인 것과 비교하면 재정 개혁 공약은 중장기 과제로 분류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재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형 재정준칙도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과제였지만 해마다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 대선 등을 치르느라 결국 유야무야되고 말았다”며 “지지율이 높은 지금 도입하지 못하면 이번에도 차기 정부로 부담을 넘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준칙과 별도로 문재인 정부 때 남발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제도에 대한 손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정부에서 예타 조사가 면제된 사업은 가덕도신공항을 제외하고도 총 144건, 105조 9000억 원에 달해 박근혜 정부(94건, 25조 원) 때보다 4배 이상 많다. 예타는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따지는 제도로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됐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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