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2013년 외교통상부의 통상 기능을 산업부로 이관할 것을 지시하자 외교부에 비상이 걸렸다. 당장 산업부로 보낼 직원을 찾기 위해 인사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채워야 할 자리는 많은데 지원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새 부처에서 그간의 경력을 인정받지 못할뿐더러 ‘외교부 출신’이라는 꼬리표에 승진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직원들 사이에 팽배했다. 본부에서 지원자가 턱없이 모자라자 인사팀은 외국에 파견 나가 있던 직원을 떠밀듯 보내 머릿수를 채워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이 통상 조직을 다시 외교부로 돌릴 수 있다는 소식에 이번에는 산업부가 술렁이고 있다. 세종에 있는 산업부 직원을 외교부가 있는 서울로 보내야 하는데 거주지를 마련하기 힘든 저연차 직원들의 불만이 벌써부터 새어나온다. 통상과 무관한 업무를 맡더라도 산업부에 남겠다는 직원들도 부지기수다. 통상 당국 내 서기관급 인사는 “통상 업무를 도맡던 직원이 다른 업무를 하게 되면 축적해온 맨파워도 함께 날아간다”며 “조직을 레고 다루듯 떼었다가 붙이기를 반복한다면 정부 내 통상 전문가가 설 자리도 좁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불거진 조직 개편론에 공직 사회가 다시 들썩이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그간 여성가족부 폐지, 교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일부 기능 통폐합, 통일부 기능 개편 등의 구상을 밝혀왔다. 집권 초 여느 정부처럼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구현할 최적의 조직을 찾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정권마다 반복되는 조직 통폐합 움직임을 보며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역대 정부가 출범 이후 통과의례처럼 정부 조직에 손을 댔지만 성공 사례를 찾기 힘든 탓이다. 정확한 진단 없이 전 정부의 색깔 지우기에만 매몰되다 보니 ‘즉흥 입안’과 ‘졸속 수정’이 반복돼 벌어진 일이다. 그 결과 인력 이동에 따라 업무 공백을 더하거나 공무원의 전문성을 훼손하는 등 후유증만 남긴 경우가 많았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권 출범 초기면 예외 없이 부처를 개편하고 다음 정부는 ‘정부 조직 개편이 실패했다’며 다시 손을 댔다”면서 “새로운 업무 영역을 만들거나 업무 간 융합을 꾀하는 게 아니라 기계적 통폐합을 반복하니 되레 국정 공백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부처는 경제기획원→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로 정권마다 부처 간판을 바꿨지만 부작용만 양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영삼 정부 당시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합쳐 만든 재정경제원은 출신이 다른 엘리트 관료들 간 업무 협조가 매끄럽지 않았다. 심지어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초래한 원인으로 이들 간 엇박자가 꼽힐 정도다. 이명박 정부는 국내 금융과 국제금융 업무를 분리해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에 각각 맡겼는데 이후 외환 관리 효율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일하는 정부가 되기 위한 실질적 조직·기능 개편 및 조정에 집중하지 못한 결과다.
정부 개편안이 여야 갈등에 얽히면서 새 정부가 지각 출범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정부조직법이 국회 문턱을 넘기까지 걸린 기간을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까지 최근 4개 정부의 경우 길게는 51일, 적어도 32일이었다. ‘윤석열표’ 조직 개편안 역시 현재 국민의힘 110석, 더불어민주당 172석의 극단적인 여소야대 구도를 고려하면 이런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취임 이후 1년은 정권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때”라면서 “정부조직법이 통과되고 공무원이 새 조직에 적응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1년을 허투루 써버리게 된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조직이라는 ‘하드웨어’를 고치기보다는 정부 운영 방식과 인사 제도 등 소프트웨어 개선을 우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근혜 정부의 인수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전 정권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려다 보니 정권 출범 때마다 조직 개편이 남용되는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추진하고 싶은 국정 과제가 있다면 각 부처 인력을 선별해 별도 태스크포스를 꾸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거듭된 조직 개편에도 부처가 제 기능을 못 하는 것은 관료 사회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조직의 장이 1년이 채 안 돼 바뀌는 인사 행태가 반복된다면 실효성이 낮고 단편적인 정책만 양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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