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긴축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난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며 인상 사이클을 본격화한 뒤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발언 강도를 점차 높이고 있다. 이대로면 연준은 올해 안에 정책 금리를 2.0% 가까이 올릴 것이 뻔한데 한은은 당장 4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조차 총재 없이 치를 판국이다. 더구나 미국과 달리 대외 변수 영향을 크게 받는 탓에 연준만큼 금리를 빨리 올릴 수도 없어 연말이면 한미 금리 역전을 피할 길이 없다.
먼저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전미실물경제협회(NABE) 연설을 통해 한 번에 금리를 0.50%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시사했다. 파월 의장은 “다음 회의에서 금리를 0.25%포인트 이상 인상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약간의 경기 둔화를 감수할 정도로 금리 수준을 높일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적극적인 통화 긴축을 시사했다.
이후 연준 인사들의 매파 발언이 쏟아졌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는 5월 FOMC에서 0.5%포인트 금리 인상 결정과 대차대조표 축소를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고 했다.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 역시 “인플레이션 수준이 매우 높아 금리 인상에 좀 더 빠르고 강력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발언했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브랜드 연은 총재는 심지어 올해 상반기 두 차례 이상 0.5%포인트 금리 인상을 고려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25일(현지시간) 존 윌리엄스 뉴욕 연은 총재가 국제결제은행(BIS)과 페루중앙은행이 개최한 콘퍼런스에서 “이론적으로 볼 때 0.5%포인트 인상이 적절하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본다”라며 결정타를 날렸다. 뉴욕 연은 총재는 의장과 부의장에 이어 연준 내 3인자로 꼽힌다. 연이은 연준 인사들의 매파적 발언에 시장 변동성은 점차 커지더니 결국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2.5%를 넘어 2019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심지어 시티(Citi)는 5월과 6월, 7월과 9월 네 차례 FOMC에서 연준이 연속으로 0.50%포인트씩 빅스텝을 밟을 것으로 전망했다.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다면 한 번에 0.75%포인트를 올릴 수 있다고도 했다.
실제로 연준은 한 번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무섭게 속도를 낸다. 연준은 2004년 2분기부터 2006년 2분기까지 9분기 만에 기준금리를 4.25%포인트 올렸다. 약 2년 만에 17차례나 올리면서 정책 금리는 연 1.00%에서 연 4.25%까지 단숨에 올랐다. 비교적 최근인 2015년 4분기부터 2018년 4분기까지는 13분기에 걸쳐 2.25%포인트를 인상했다. 제로금리 수준이던 정책 금리는 9차례 인상을 통해 연 2.25~2.50%까지 올라섰다. 1970년대는 한 번에 4%포인트씩 올리는 일도 있었다.
연준 금리 인상 속도가 빠를수록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커진다. 금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15~2018년 수준으로 연준이 금리를 올린다고 가정했을 때 환율 상승 폭은 8% 수준이다. 그러나 2004~2006년처럼 빠르게 금리를 올리면서 시장 불안까지 상당 기간 지속된 경우 환율 상승률은 17~22%로 확대된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나 2015년 중국 금융 리스크가 부각된 시기에나 볼 수 있는 변동성이다.
하지만 한은은 연준만큼 금리를 빨리 올려 대응할 수 없다. 한은은 지난해 8월과 11월, 올해 1월 등 세 차례 걸쳐서 0.25%포인트씩 올려 0.50%에서 1.25%로 인상했다.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에 두 번 연속 인상한 것도 약 1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연준의 인상 속도나 물가 등 대내외 경제 상황을 보면 한은도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있지만 다음 달 인상조차 불투명하다. 물론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기도 쉽지 않다.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렸다지만 순식간에 따라잡힐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학계에서는 우리나라가 미국만큼 금리 인상 속도를 낼 수 없는 이유를 두 나라의 경제 산업 구조 차이에서 찾는다. 미국은 내수에 기반을 두고 있어 경제 규모에 비해 개방 정도가 낮지만, 우리나라는 수출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소규모 개방 경제다. 특히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대외 변수가 생겨도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유럽 등 전 세계 어디에서 무슨 일만 터지면 즉각적인 충격이 나타난다. 신경 쓸 것이 많아 더욱 조심해서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고, 추가 인상이 필요해도 경기 둔화 등 동결 또는 인하 요인이 자꾸 등장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중앙은행 독립성이나 정부와의 관계도 있겠지만 경제 구조가 외풍에 영향을 받는 나라냐 아니면 내수만 보면서 통화정책을 할 수 있는 나라냐에 따라 금리 인상 속도가 달라진다”며 “글로벌 상황에 덜 민감한 미국은 과거 ‘테이퍼 텐트럼(긴축 발작)’ 트라우마를 신경 쓰다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쳤지만 이제부턴 흔들리지 않고 금리를 올리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금융센터도 과거 연준의 금리 인상 시기를 분석한 결과 과거 평균보다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단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물가 상승률은 매우 높은데 실업률은 비교적 낮은 상황인 만큼 빠르게 큰 폭의 금리 인상이 단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제금융센터는 “고물가에 따른 통화긴축 후 연착륙 성공 사례가 없어 향후 위기에 대한 경계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제는 이미 연준의 금리 대폭 인상 가능성만으로 한국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8일 기준으로 3년물 금리는 2.747%로 2014년 6월 12일(2.789%) 이후 7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10년물 금리는 연 3.031%로 0.16%포인트 올라 2014년 9월 19일(3.027%)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연재입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