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나라 살림 기조를 ‘확장 재정’에서 ‘재정 건전성 회복’으로 고쳐 잡았다. 문재인 정부 5년간 늘어난 씀씀이에 국가 채무가 빠르게 늘어나자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29일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2023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지침’을 의결했다. 기획재정부가 만든 예산 지침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등이 내년 예산을 짤 때 적용해야 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각 부처가 5월까지 예산 요구서를 기재부에 내고 정부 예산안은 9월 2일 국회에 제출된다.
내년 예산안 지침은 지출 구조 조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 해 재정 운용 기조를 담은 기본 방향을 보면 예년에는 ‘적극적 재정 운용’이 명시됐지만 이번에는 ‘필요한 재정의 역할 수행’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됐다. 문재인 정부의 확장 재정 정책을 상징하던 ‘포용적 선도 국가 전환’과 ‘한국판 뉴딜’도 지침에서 모두 빠졌다. 예산 당국의 한 관계자는 “지난 5년처럼 돈을 풀 수도 없고 풀어서도 안 된다”면서 “불가피하게 정부 지출을 늘리더라도 이제는 속도 조절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부처가 자율적으로 책정하는 예산인 재량 지출을 10% 절감하겠다는 내용도 지침에 담겼다. 집행 실적이 부진한 개별 사업을 추려내 올해 예산보다 최대 50%까지 줄이겠다는 구체적인 시행 방안도 함께 포함됐다.
정부는 또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예산 규모를 일시적으로 늘린 정책 지원 사업도 정상화할 방침이다. 고용 유지 지원금이나 방역 지원금 등이 우선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구조 조정에 따라 절감할 수 있는 예산은 10조 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최상대 기재부 예산실장은 “재량 지출은 인건비나 경직성 경비를 제외하고 절감이 가능한 모수를 산정해서 구조 조정을 하는데 통상적으로 약 10조 원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 된다”면서 “재량 지출 절감과 코로나 한시 지출 정상화를 고려하면 통상적으로 매년 절감하는 규모보다 어느 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예산 구조 조정에 무게를 실은 것은 지난 5년간 ‘슈퍼 예산’이 반복 편성되면서 재정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예산 기준 연도별 재정 지출 추이를 살펴보면 2010년 이후로 해마다 전년 대비 2~5% 증가하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18년 7.1%, 올해 8.3% 등 증가 폭이 크게 늘어났다. 맞물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설 당시 36.0%(2017년)에서 올해 50.1%로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다만 이런 지침은 5월 출범하는 차기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일부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 내년도 예산을 직접 편성하는 것은 현 정부가 아닌 윤석열 정부이기 때문이다. 최 실장은 “이번 편성 지침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도 실무적으로 협의를 했다”면서 “오는 4월 말∼5월 초에 공약 국정 과제가 어느 정도 구체화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반영해서 5월 초 추가적인 보완 지침을 각 부처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출 부문을 살펴보면 보건·복지 분야에서 초저출산 대응에 재원을 집중적으로 배분하기로 했다. 민생 분야에서는 식료품·에너지 비용 등 생활 물가 안정을 지원하고, 주거 부담 완화를 위해 맞춤형 임대주택 공급도 늘린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