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원화에 대한 엔화 가치가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자동차·철강·석유화학 등 국내 기업들의 수출 전망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달러 강세와 원유가 상승까지 겹치면서 항공업계와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들의 부담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30일 산업계에 따르면 원화와 엔화 가치 간격이 계속 벌어지면서 일본과 수출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들의 긴장도가 높아지고 있다. 엔화가 약세를 보일수록 일본산 수출품은 가격이 싸지는 반면 한국산은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늘어나는 효과가 생기는 탓이다. 2010년대 초중반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이 80엔대에서 120엔대로 치솟았을 때도 한국 수출 기업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해외시장에서 가격경쟁이 치열한 자동차 업종이 직격타를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업체들이 환차익을 앞세운 판촉 물량 공세로 세계시장에서 우리 기업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매운동으로 주춤했던 일본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필두로 한국 내수 시장까지 역공할 가능성도 높다.
일본과 수출 경쟁 관계에 있는 철강과 석유화학업계도 마찬가지다. 일본에는 차세대 반도체·배터리 소재, 정밀화학 원료·제품 등에 강점을 가진 기업이 많은데 가격 경쟁력에서도 우위를 점할 경우 우리 기업들의 이익이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화학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일본에서 수입하는 원자재 비중이 비교적 큰 편이어서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오히려 가격이 싸지며 우리 기업이 수혜를 보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비중도 작아졌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유가도 폭등하는 상황에서 환율 변수까지 발생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워낙 대외적인 변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기고 있어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미 재무구조가 악화된 항공사들에는 달러 강세가 큰 짐이다. 항공사는 항공기 임대료, 항공유 등을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달러 환율이 오르면 막대한 환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아시아나항공(020560)의 경우 지난해 외화 환산손실액이 5353억 원으로 2020년보다 이미 두 배나 더 증가한 상황이다. 티웨이항공과 에어부산은 부분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다.
다만 반도체 등 전자업종은 환율 변수에 상대적으로 피해가 작을 것으로 평가됐다. 반도체의 경우 일본과 연계된 공급망 안에 있기에 경쟁 관계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모바일 등 통신기기는 기술·판촉 측면에서 한국이 확연한 우위에 있다.
조선업종도 수출 경합도는 높지만 주력 품목이 달라 손실이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됐다. 오히려 일본 부품의 가격이 낮아지는 원감 절감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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