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에게는 ‘정관(貞觀)의 치(治)(627~649년)’라고 해 가장 번영했던 시대를 이끈 황제 중 하나로 꼽히는 당 태종. 당시 대표적 참모가 위징(魏徵)이다. 당초 태종의 정적 편에 섰던 위징은 인재를 알아본 태종에게 죽을 고비에서 전격 발탁된다. 태종이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면 템포를 조절해 현명하게 간언한다. “저를 (사형을 당하기도 하는) 충신(忠臣)보다 (군주와 신하 모두 아름다운 명성을 얻는) 양신(良臣)으로 만들어 주십시오”라는 말이 그의 캐릭터를 대변한다.
이 과정에서 태종은 ‘몇 번이나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나중에 실토할 정도로 위징은 충신의 면모도 갖추고 있었다. 훗날 위징이 숨진 뒤 태종은 ‘(나를 비추는) 거울을 잃었다’며 애통해 했고, 고구려에 대한 수차례 침략 전쟁에서 실패한 뒤에도 ‘위징이 있었더라면 나를 말렸을 텐데…’라고 한탄했다.
위징의 얘기를 길게 꺼낸 것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차기 정부 첫 총리로 지명하면서 과연 한 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내각과 대통령실에 어떤 스타일의 인물이 기용될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먼저 한 후보자가 국회의 높은 벽(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을 넘어 양신이 될 수 있을까. 그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까지 보수와 진보 정권을 넘나들며 승승장구했다. 통상산업부 차관, 통상교섭본부장, 청와대 경제수석, 국무조정실장, 경제부총리, 국무총리, 주미대사, 무역협회장 등 수많은 요직을 거쳤다. 하지만 “위기 때마다 해결사로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고 기술주권이 중요한 이때 경제안보의 적임자(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장)”라는 평가와 “소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순응형·관리형 리더로서 카멜레온처럼 변신했다(김기만 전 방송광고공사 사장)”는 지적이 있다. 다만 그가 고향을 김영삼 정부까지는 서울이라고 했다가 김대중 정부 들어 전북 전주라고 바꿨다는 일화에서 개인적인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다. 선산이 전북 부안에 있는 그는 전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서울로 전학했다.
과연 한 후보자가 ‘책임총리’라는 말을 언급하며 ‘대통령실의 막강한 권력을 총리실과 내각에 분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힌 게 실천될 수 있을지 자못 기대된다.
이명박 정부에서 당정청 요직을 두루 거친 임태희 대통령 당선인 특별고문은 “원래 권력 주변에는 ‘예스맨’이 모이기 마련이다. 자리 욕심이 있는데 직언을 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며 “하지만 권력자가 잘못 판단할 경우 당 태종 때 위징이 원했던 양신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자는 3년 전 문재인 대통령에게 ‘청와대에 레드팀을 두라’고 권고하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소득 주도 성장 등 정책 파열음을 멈추게 하려면 최악의 시나리오와 부작용을 미리 분석해 오류를 고치고 역발상을 통해 대안을 찾는 ‘레드팀’을 둬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레드팀은 1587년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성인(聖人)을 추대할 때 ‘신의 대변인’에 맞서 반대 이유를 드는 ‘악마의 대변인’에서 비롯됐다. 19세기 독일을 통일한 프로이센 군대가 전투 계획을 짤 때 적의 역할을 맡은 팀을 부르는 말이기도 했다.
현재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레드팀을 두고 고정관념이나 확증 편향에서 벗어나 혁신적인 대안을 만들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안보 분야, 이스라엘 총리실과 군 등 일부 정부 기관에서도 위기 관리용으로 레드팀을 활용한다. 소셜미디어가 발달해 집단사고를 집단지성으로 착각하기 쉬운 요즘, 블랙스완(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일어나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도 레드팀이 필요한 것이다.
모쪼록 앞으로 5년간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게 될 차기 정부가 대통령실과 각 부처, 공공기관에 민간 중심의 창의적이고 엉뚱한 ‘레드팀’을 뒀으면 한다. 그게 바로 ‘현대판 양신’이다. 그것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마다 찢었다가 붙였다를 반복하는 정부 조직개편보다 앞서는 과제이다.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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