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년 3개월 만에 4%를 넘어서면서 14일 기준 금리 결정을 앞둔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 공포가 엄습한 가운데 미국 중앙은행의 공격적 긴축 행보까지 가시화하면서 금리 인상의 명분은 하나둘 쌓이는 상황이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마저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이 물가 상승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의 성장성까지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칫 이달 금리 인상이 스태그플레이션으로의 문을 여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당초 5월 금리 인상에서 이달 인상 가능성이 커지고 있음에도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운명의 시간은 일주일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14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회의는 사상 처음으로 금통위 의장을 겸임하는 총재가 없는 상태에서 열린다. 금통위는 지난해 8월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해 같은 해 11월과 올 1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기준 금리를 1.25%까지 끌어올렸다. 추가 인상은 2분기(4~5월)로 넘겨 놓은 상태다.
그간 시장 분위기는 4월은 건너뛰고 5월에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쪽이었다. 하지만 최근 며칠간 기류는 확연히 달라졌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미 중앙은행의 매파적 쏠림 등이 3각 파고가 돼 우리 경제를 덮쳤기 때문이다. 특히 5일 발표된 3월 소비자물가 쇼크는 결정타가 됐다. 이날 한은은 예정에 없던 물가상황점검회의까지 열어 당분간 4%대를 유지하고 올해 연간 상승률은 기존 전망치인 3.1%를 크게 웃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방위적으로 확산하는 물가 상승세가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실타래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미국이다. 기준 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2회 연속 단행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와 금통위의 금리 인상을 압박하고 있다. 자칫 금통위가 결정을 머뭇거리다가는 올해 안에 한국과 미국의 기준 금리가 역전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이달 금통위가 금리 인상이라는 강수를 둘 수 있다는 전망이 세를 얻는 상황이다. 한은 관계자는 “총재가 없는 와중에도 금리를 올릴 경우 오히려 합의제 기구로서 금통위의 독립성과 위상을 보여줄 수 있다”며 “총재 공백은 금통위 결정에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인 주상영 금통위원이 금통위 의장대행을 맡는 점도 금리 인상 가능성에 무게가 더 실리는 요인이다.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지 않는 금통위 의장의 관례에 비춰볼 때 인상과 동결 의견이 3 대 2로 나왔을 경우 평소 동결을 주창해온 주 위원도 다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주 위원이 동결 의견에 동참하면 3 대 3 동수로 금통위 결정은 부결되지만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인플레이션 대응이 중앙은행의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추가 금리 인상은 시간문제”라며 “주 위원이 의장대행을 맡는 만큼 만장일치 인상의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고 예측했다.
다만 대외 악재로 성장 둔화 우려가 커지는 점은 부담이다. 특히 급등하는 국채금리에 기름을 부으며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을 키울 가능성도 있다. 실제 이날 3년물 국채금리는 2.99%, 5년물과 10년물도 각각 3.1%, 3.17%로 마감해 또다시 연중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 이런 이유로 이달 대신 5월 인상을 점치는 신중론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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