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3년간 10억 달러 규모의 자금 지원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대(對)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는 동시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도 나서는 모습입니다. 미국이 러시아 제재 여부와 우크라이나 지원 수준에 따라 피아(彼我)를 구분해 압박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9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최근 인수위 경제1분과에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제출했습다. 앞서 인수위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방안을 찾아달라”고 기재부에 주문한 데 따른 것입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기재부가 이번 주 초 최상목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에게 초안을 전한 것으로 안다”면서 “기재부가 몇 가지 카드를 준비하고 있는데 인수위가 이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재부가 고민하는 방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활용하는 방안입니다. 구체적으로 3년간 1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는 안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EDCF를 활용한다면 지원 규모는 한국과 우크라이나간 추후 협상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면서 “구체적인 규모를 현 시점에서 언급하긴 이르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간접 지원입니다. 최근 캐나다 등이 IMF 내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별도 기금(계정)을 신설하려 하는데 여기에 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입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우크라이나 지원에 속도를 내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의지가 우선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윤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를 만나 물자 지원을 약속했고 지난달 29일에는 당선인 신분으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직접 통화하기도 했습니다. 구체적인 통화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윤 당선자에게 우크라이나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양측이 통화를 마친 지 열흘도 안 된 시점에 인수위가 지원을 검토하는 것은 미국의 행보를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러시아 제재 여부와 우크라이나 지원 수준에 따라 편가르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 전쟁 초기 미국은 수출 통제 조치에서 유럽연합(EU) 27개국과 일본·호주·영국·캐나다·뉴질랜드를 빼주면서도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우리나라는 배제했습니다. 우리 정부로서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통해 이런 역풍 가능성 자체를 원천 차단하고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다른 국가에 보여주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미국의 우방으로 분류되는 주요 국가는 이미 지원에 나선 상황입니다. 미국 주도의 대러 제재에 적극 동참해온 일본은 지난달 1억 달러를 지원한 데 이어 이달 들어 추가 지원도 공식화했습니다. 영국 역시 우크라이나에 1억 8600만 달러 상당을 지원했습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다른 국가에 비해 지원 결정이 다소 늦은 감이 있는 만큼 10억 달러 수준으로 지원 규모를 불려 만회하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원 방안으로 대외협력기금(EDCF)이 거론되는 점도 주목할 만한 지점입니다. 그간 정부는 전략적 협력이 필요한 국가와 관계를 다지는 마중물로 EDCF를 활용해왔습니다. 일례로 문재인 대통령이 1월 K-9 자주포 수출 등을 매듭짓기 위해 이집트를 방문했을 당시 우리 측에서 내민 카드가 EDCF였습니다.
다만 EDCF를 활용하기에 앞서 상대국과 기본 계약 등 실무 협상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지원 시점이 다소 늦어질 수 있습니다. 이에 인수위 측은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지원 방식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러시아와의 관계도 어느 정도 고려해야 하는 만큼 직접 지원보다는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 지원이 보다 적절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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