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장이 실적이 안 좋아 후선으로 물러나는데 그 밑에 차장이 승진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이 최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사에 그룹 주요 임원들을 소집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점장이 연속으로 인사 평가가 좋지 않아 ‘업무추진역(MBO)’으로 나가는데 함께 일했던 바로 밑의 직원이 승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MBO는 은행에서 목표를 부과 받은 뒤 개인영업을 하는 형태로 일반적으로 좌천성 인사로 분류된다.
함 회장은 지점의 실적은 지점장과 부하 직원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보고 있다. 보상은 물론 책임도 나눠질 필요가 있다는 게 함 회장의 지론이다. 회의에 참석한 한 임원은 “지점장의 개인기로만 지점의 실적을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함 회장이 모두가 같은 목표를 갖고 움직여야 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전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지점장과 팀장·차장급 인력이 하나의 팀이 돼 뛰라는 뜻으로 읽힌다”며 “지점이라는 하나의 작은 조직 내에서 큰 틀의 방향성을 공유하고 관리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함 회장의 인사 기조는 임직원 모두가 주인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평소 생각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최근에도 영화 ‘플레이밍 핫’을 임원들에게 소개하며 주인정신을 되새길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미국 과자 업체의 청소부였던 주인공이 과자 업계를 뒤흔든 제품을 만들고 임원 자리에 오른 성공담을 담고 있다. 함 회장이 주목한 대목은 주인공을 일깨운 계기가 “직원 누구나 대표이사(CEO)처럼 생각하라”는 과자 업체 CEO의 독려였다는 대목이다. 함 회장은 “주인정신만 갖고 있다면 영화 속 청소부도 등용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하나금융”이라면서 임원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이는 학벌과 연공서열을 배제하고 철저한 능력 중심으로 인사하는 조직 문화를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충남 강경상고를 나온 함 회장은 그룹 CEO까지 올랐다. 하나금융 계열사의 한 임원은 “함 회장은 학벌이 뛰어나지 않아도 ‘백’이 없어도 능력만 있으면 금융지주 회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본”이라며 “임원들에게 더 노력할 것을 주문한다”고 전했다. 다른 임원은 “함 회장이 ‘임원들이 다들 본인보다 더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다’고 격려해주면서도 본인만큼 열심히 뛰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낸다”고 전했다.
함 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은행 같은 그룹 강점 분야의 초격차 성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은행 부문의 꾸준한 성장도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은행은 경쟁사 대비 격차를 더 벌리고 비은행은 키워서 균형 있는 성장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룹 내 디지털 금융 부문의 성장이 더 빨라져야 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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