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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 기초연금 20년 누적 비용 1000조…국민연금 개혁도 산으로 갈라

◆기초연금 인상이 몰고올 후폭풍

국민연금 평균 55만원VS 기초연금 부부 64만원 ‘역전’

대선때마다 '인상'공약…尹정부 '건전재정복원' 아킬레스건

수급자 30% 非빈곤층 …노인 빈곤개선 ‘가성비’ 떨어져

OECD권고대로 취약층중심 재설계 ‘차등·선별복지’로





2013년 9월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 말미에 “그동안 저를 믿고 신뢰해주신 어르신들 모두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가 생겨서 죄송한 마음”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기초연금을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매월 20만 원씩 지급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뒤집은 데 대한 대국민 사과였다.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맞물린 해로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의 ‘좌클릭’으로 여야 정치권의 무상 복지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시기였다. 박 대통령은 이튿날 청와대로 어르신을 초청한 자리에서도 재차 사과했다.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 공약 수정은 재빨랐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을 최대 50%(10만 원) 삭감하는 슬라이딩 조항을 신설한 데 이어 새 정부 출범 직후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70%로 축소하는 방안을 최종 확정했다. 노인 홀대론까지 번진 기초연금 공약 파기 논란은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자진 사퇴로 수습됐다. 공약 수정의 결정적 요인은 재정 절벽이었다. ‘증세 없는 복지’를 기치로 내건 박근혜 정부는 정부 출범 첫해부터 ‘마이너스 통장’을 안고 출발했다. 디플레이션이 우려될 정도로 전반적인 경기가 부진해 재정 수입이 예상보다 덜 걷히는 ‘세수 펑크’가 일상화했던 것이다. 2013년 5월 첫 추가경정예산 17조 원 가운데 무려 12조 원이 ‘세입 경정(부족 세입 보전)’일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2013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이 기초연금 노인 100% 지급 공약을 철회한 데 대해 ‘죄송한 마음’이라며 사과하는 TV 보도를 한 어르신이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래 기초연금은 국민연금 제도가 도입된 1988년 국민연금에서 소외된 노인 취약 계층에 대한 노후 소득 지원용으로 출발했다. 기초연금의 원조 격인 노령수당과 경로연금 때까지만 해도 지원 대상이 각각 7%와 15%에 불과했지만 독자적 법령이 뒷받침된 기초노령연금 때부터 노인 70%로 확대되면서 사실상 보편적 복지 제도로 자리 잡게 됐다. 이때부터 기초연금은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통한 노인 빈곤 해소라는 취지는 퇴색되고 점차 표를 겨냥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변질됐다.

정치권은 증액에 열을 올렸다. 대선만 치르면 10만 원씩 계단식으로 올랐다. 노인 표를 잡는 데 그만한 공약도 없기 때문이다. 2007년 17대 대선 국면에서 경로연금(최대 5만 원)이 기초노령연금으로 바뀌면서 지급액이 10만 원으로 2배 오르더니 박근혜 정부에서 20만 원, 문재인 정부에서 30만 원으로 각각 인상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역시 ‘대선 법칙’에 따라 40만 원 인상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문제는 엄청난 재원 부담이다. 윤 당선인은 기초연금 인상으로 인한 추가 재정 소요액을 5년 동안 34조 원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5년 만으로 지출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로 갈수록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데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와 2차 베이비부머(1970~1974년생) 세대 영향으로 향후 20년 동안 해마다 80만 명가량이 노인 인구에 새로 진입하게 된다.

그럼 미래 재정 부담은 얼마나 될까. 2019년 좌초한 국민연금 개혁 Ⅱ안(국민연금 대체소득율 40% 유지+기초연금 40만 원 인상)에서 재정 소요액을 가늠해볼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추계에 따르면 2022년부터 월 40만 원씩 올릴 경우 기초연금 재원은 2025년 34조 원, 2030년 52조 원, 2040년 102조 원, 2055년 202조 원 등으로 급격히 늘어난다. 10년마다 2배씩 늘어나 2040년까지 누적으로 1000조 원을 돌파한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재정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정부와 지방이 대략 7 대 3 비율로 분담하는 구조여서 재정 자립도가 낮고 노인이 많은 자치단체일수록 부담이 가중되는 문제도 있다. 염명배 충남대 명예교수는 “기초연금 인상 공약은 재정 건전성을 복원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2016년 4월 총선을 한 달 앞두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기초연금을 30만 원으로 인상하는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30만 원 인상은 문재인 정부 들어 현실화했다. 연합뉴스




비단 재정 압박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국민연금 가입자와의 형평성 시비는 차치하고서라도 국민연금 개혁의 동력까지 훼손하는 기폭제가 될 우려가 있다. 국민연금보다 기초연금을 더 많이 받는 역전 현상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40만 원 인상 공약이 현실화하면 노인 부부 가구 수급액은 월 64만 원(부부 감액 반영)으로 국민연금 1인당 평균 급여액 월 55만 원을 웃돈다. 저소득 지역가입자로서는 굳이 절약해서 꼬박꼬박 보험료를 낼 이유가 없을 것이다. 국민연금 수급자 가운데 60.8%(351만 명)가 월 40만 원 이하의 급여를 받는 현실은 기초연금 인상의 후폭풍이 간단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기초연금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면 최악이다. 국회에는 이미 50만 원 인상안과 전 노인 지급안이 의원 입법으로 계류 중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 개혁 청사진을 밝히기 앞서 기초연금 인상부터 추진한다면 국민연금 개혁은 산으로 가고 기금 재정은 골병이 더 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렇잖아도 현행 제도는 국민연금 가입자를 역차별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기초연금 슬라이딩 조항이 대표적이다. 국민연금 급여가 대략 기초연금의 1.5배인 46만 원을 넘으면 기초연금 수급액이 깎인다. 이와 관련해 2018년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안을 만들 당시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는 “국민연금 가입 유인을 저해하는 문제가 있다”며 감액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흔히 기초연금 인상의 논거로 선진국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을 꼽는다. 이를 떨어뜨리기 위해 재정 추가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기초연금 제도가 시행된 2014년 44.5%의 노인 빈곤율은 2020년 사상 처음으로 40% 아래(38.9%)로 떨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3.5%(2019년 기준)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빈곤 상황은 여전하다.

한 노인 단체가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기초연금을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차등 없이 지급하라고 주장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노인 빈곤 개선이 기대 이하인 것은 보편적 복지를 지향한 설계 오류에서 비롯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연금의 정치화’로 가능한 한 ‘폭넓고 얇게’ 지원하는 것이 ‘좁고 두툼하게’ 지원하는 것보다 득표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윤 연구위원은 “기초연금 수급자 가운데 3분의 1은 OECD 빈곤 선보다 소득이 높은 비(非)빈곤층”이라며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에도 지원하는 현행 제도로는 빈곤율을 획기적으로 떨어뜨리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OECD가 ‘한국경제보고서’를 통해 지속적으로 수혜 폭을 줄이고 대신 두껍게 지원할 것을 권고하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기초연금 제도를 차등·선별적 복지로 전환하지 않고 수급액만 인상한다면 노인 빈곤 개선 효과는 미미한 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공산이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는 최소 200조 원을 투입하고도 저출산 문제를 개선하지 못한 것과 흡사한 상황이다. 염 교수는 “공약 철회가 최선이지만 정 어렵다면 차등 지급하는 차선책을 마련해야 빈곤 개선의 성과도 내고 재정 부담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성주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초연금 제도를 손질할 경우 베이비부머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학력과 소득이 높고 국민연금 급여 수준도 점차 늘어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수위 주변에서는 국민연금 개혁 과정에서 기초연금 인상이 반대 급부로 대두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설령 그렇다 해도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노인 빈곤 개선의 실효성을 제고하려면 기초연금 재설계는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다. 성가신 국민연금 개혁은 미루거나 흉내만 낸 채 손쉬운 기초연금 인상만 달랑 하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다.

권구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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