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를 둘러싼 대외 경제 여건이 14년 전 이명박 정부의 집권 초기와 비슷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 이른바 ‘MB맨’들이 주요 참모로 대거 중용되는 가운데 과거의 정책 실패까지도 고스란히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당장 고유가와 이에 따른 고물가는 윤석열 경제팀에 발등의 불이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4.1%나 올라 10년 3개월 만에 4%대를 돌파했다. 지난해 1월만 해도 0.9%에 불과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예상보다 빠른 경기회복에 공급망 쇼크까지 더해져 지난해 중반부터 오름세를 탔다. 급기야 우크라이나 사태마저 장기화되면서 상승세는 최근 더 가파르다. 이미 글로벌 투자은행(IB)인 UBS는 올해 우리나라 물가 상승률로 4.1%를 제시했다. 지난해 연말 정부가 공식적으로 제시한 2.2%보다는 2%포인트 가까이 높고 한국은행 전망치(3.1%)와 비교해도 1%포인트 높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마저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명박 정부 때도 물가 여건은 비슷했다. 정부 출범 전인 2007년 2.5%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글로벌 고유가의 영향으로 출범 첫해인 2008년 7월 5.9%까지 치솟았다.
고환율이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물가 전반에 부담을 주는 것도 두 정권이 모두 유사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전인 2007년 말 달러당 93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이듬해 9월 1207원까지 치솟았다. 최근 환율은 이보다 더 높아 달러당 122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통상 우리 외환시장에서 1200원 선을 환율 관리의 마지노선으로 보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다만 고환율의 원인에는 차이가 있다. 최근 원화 가치 하락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 긴축 시사에 따른 것이지만 이명박 정부 때는 ‘747 성장’을 앞세운 경제팀이 고환율을 유도한 측면이 있다. 허진욱 KDI 연구위원은 “MB 정부가 수출을 늘리기 위해 정책적으로 고환율을 용인하면서 물가가 급등하는 부작용이 있었다”며 “우리 경제의 체급이나 대외 신인도를 감안할 때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시장에서는 “국제수지를 흑자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발언이 나온 뒤 과거처럼 고환율 정책을 펼칠 수도 있다는 의미가 아니냐는 해석이 돌기도 했다.
고물가는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로 거론되지만 물가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펼친 정책 중에서는 윤석열 경제팀이 참고할 만한 부분도 있다. 당시 이명박 경제팀은 물가 관리를 위해 재정 기조를 긴축으로 전환하는 한편 재정 조기집행비율을 끌어내려 재정의 물가 자극을 최소화했다. 실제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 200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4.1%까지 불어났던 재정 적자는 2011년 2.0%까지 낮아졌고 같은 기간 64.8%였던 상반기 재정 조기집행률도 57.4%까지 낮췄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GDP 대비 4.4%에 이르고 올해 30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다고 가정할 경우 GDP 대비 4.7% 내외까지 적자가 불어나게 된다. 민간 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추경으로 유동성을 풀면서 물가도 잡겠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말했다.
금리 흐름은 두 정부의 여건이 서로 다르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한국은행은 물가 우려에도 불구하고 5.25%에 달했던 금리를 이듬해인 2009년 2.0%까지 끌어내렸지만 최근에는 선제적 금리 인상으로 기조를 틀었다.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 가계나 기업이 충격을 받아 투자와 소비가 모두 위축될 우려가 있지만 고물가의 부작용이 현재로서는 더 크기에 이명박 정권 때처럼 정부가 나서 금리정책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물가가 안정이 안 되면 정상적인 경제성장도 어렵고 경제 활성화는 기업 규제 완화와 투자 지원 등의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며 “어느 정도 속도 조절은 필요하겠지만 경제성장을 위해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물가·고환율 대응에 고금리 정책이 불가피한 만큼 정부가 여기서 파생되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의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