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증권이 엔지켐생명과학(183490)의 유상증자 실권주를 떠안으며 ‘뜻하지 않게’ 최대주주가 된 가운데 지분 평가 손실분이 200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KB증권은 ‘금융 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에 따라 추가 손실을 감수하며 지분을 팔아야 한다. 시장에서는 엔지켐생명과학의 ‘잠재적 매도 물량(오버행)’ 리스크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5일 코스닥 시장에서 엔지켐생명과학은 전 거래일보다 900원(3.72%) 내린 2만 33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엔지켐생명과학이 주식시장에서 약세를 보인 것은 KB증권의 엔지켐생명과학 보유 지분이 시장에 한꺼번에 풀릴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현재 KB증권은 엔지켐생명과학 지분 중 18.78%를 보유해 이 회사의 손기영 대표 및 특수관계인(12.07%)보다도 더 많은 주식을 갖고 있다. 올 2월 엔지켐생명과학이 실시한 유상증자가 부진하자 대표 주관사였던 KB증권이 실권주를 모두 인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산법 규제로 KB증권은 해당 지분을 강제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금산법에서는 금융기관이 다른 회사의 의결권 있는 발행 주식 총수의 20%를 보유할 경우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지분율이 20%를 밑돈다고 해도 기존 최대주주보다 낮은 지분율을 보유하도록 권고한다.
KB증권은 이미 200억 원대의 평가 손실을 입었다. KB증권은 지난달 2일 유상증자 실권주 380만 9958주를 주당 3만 1800원에 사들여 지분 27.97%를 보유했다. KB증권은 같은 달 15~18일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119만 4538주를 주당 2만 9300원에 매도하며 지분율을 18.78%까지 줄였다. 현재 주가 수준을 고려하면 222억 원의 평가 손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정관 변경으로 KB증권이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고 파는 것도 어려워졌다. 엔지켐생명과학은 지난달 31일 주주총회에서 대표·사내이사 해임 시 각각 200억 원, 100억 원의 퇴직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등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정관 변경안을 의결했다. 엔지켐생명과학의 경영권을 노린 누군가가 KB증권의 지분을 인수해도 기존 최대주주가 실질적인 경영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KB증권이 엔지켐생명과학 지분을 한꺼번에 파는 선택을 하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블록딜을 통해 보유 주식을 조금씩 털어내면서 주가 폭락을 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KB증권이 엔지켐생명과학으로부터 실권 수수료 121억 원을 받은 상황이라 손실 폭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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