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성장 잠재력이 매년 추락하고 있는 가운데 중복지·중부담 국가로 복지 체계를 전환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진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의 전신) 장관은 20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개최한 ‘국가미래전략 컨퍼런스’ 기조연설에서 “한국 경제의 활력이 식어가고 있다”며 이처럼 강조했다.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인 진 전 부총리는 1990년 재무부 차관을 시작으로 동력자원부·노동부·기획예산처·재경부에서 모두 장관을 지내면서 ‘직업이 장관’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정권과 관계없이 중용된 원로다.
그는 이날 콘퍼런스에서 △성장 잠재력 하락 △고용 사정 악화 및 소득 불균형 △주력 산업 경쟁력 위협 △서비스 산업 장벽 △경제의 정치화 등을 한국 경제가 짊어지고 있는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전 세계가 환경·기후 위기 속에서 글로벌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대외 환경이 엄중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 같은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는 성장과 복지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비상하기 위해서는 성장 엔진을 확충하는 동시에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이뤄야 한다”며 “성장이 복지를 담보하지는 않지만 성장 없는 복지는 환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급격히 불어난 복지의 경우 단순히 현금을 나눠주는 수준의 복지에 그치지 말고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복지와 일하는 복지로 복지 구조 자체를 업그레이드 하자는 게 그의 제안이다. 그는 “현재 복지 프로그램을 전면 점검해 전달 체계를 정비하고 중기적으로 복지 시스템을 중부담·중복지 국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우리나라 정치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리스크’가 되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는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 식의 정치 행태가 우리나라 경제의 핵심 리스크”라며 “미래 비전보다 과거에 매몰된 ‘패거리 정치’와 흠집 내기, 갈등 조장, 공천권으로 국회의원의 자율적 의사 결정을 제약하는 정당 지배 구조 등이 모두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한 비전과 전략’을 주제로 열린 이날 콘퍼런스에서는 진 전 부총리의 기조연설에 이어 미중 전략 경쟁, 공급망 교란, 디지털 경제 심화, 인구 고령화, 기후변화 등 우리 경제가 직면한 국가적 과제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이뤄졌다.
정대희 KDI 글로벌경제연구실장은 “미중 간 체제 및 기술 경쟁이 심화하고 포괄적 보호주의가 등장한 데 이어 반중 공동전선을 펴고자 하는 ‘보호주의의 진영화’ 단계까지 진입했다”고 평가하면서 “미중 간 디커플링(탈동조화)에 대한 양자택일 식의 단면적이고 이분법적인 시각을 벗어나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조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구자현 KDI 산업·시장정책연구부장은 “세계 각국은 첨단 기술을 확보하고 첨단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고, 그동안 금기시돼 온 산업 정책이 부활하는 양상”이라며 “불확실성에 투자하는 기업에 세제 및 금융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요셉 KDI 연구위원은 인구 고령화와 관련해 “임금 체계 개편과 함께 점진적 정년 연장을 추진할 필요성이 있지만 세대 간 상생을 위해서는 보다 신중하고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