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칩에 이어 장비까지 품귀 현상을 보이면서 반도체 대란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반도체 부족 현상이 2024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공급난이 해소될 시점을 내년에서 내후년으로 늦춰 잡은 것이다. 전기자동차·로봇·인공지능(AI) 등 미래 첨단산업의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는 반면 원자재 값 상승, 물류난, 부품·장비 부족 등으로 생산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다음 달 21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더욱 공고히 하고 생태계 구축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겔싱어 CEO는 회계연도 기준 2분기(지난해 12월 26일~올해 4월 2일)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생산 장비 부족으로 업계가 전반적으로 이전에 생각했던 속도만큼 공급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며 반도체 부족 사태가 2024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당초 그는 반도체 부족 사태가 2023년에는 종식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각 산업에서 폭증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생산을 늘려야 하는데도 반도체 제작에 쓰이는 장비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와 ASML·KLA·램리서치 등 주요 장비 업체들은 최근 반도체 제조사에 ‘장비를 받으려면 최소 1년 반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공지하고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한 물류난으로 렌즈·밸브·펌프·마이크로컨트롤러·전자모듈 등 부품 대부분이 동난 탓이다.
삼성전자·TSMC·인텔 등은 최근 증산에 나섰지만 극자외선(EUV) 노광기 등 장비가 부족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심각한 공급난에도 글로벌 대내외 악재로 인한 수요 감소로 반도체 가격 상승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5월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기대를 걸고 있다. 경제가 곧 안보가 된 시대에 외교적 차원에서 반도체 공급망 문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수 전국경제인연합회 아태협력팀장은 “안정적 공급망 확보가 가장 핵심인데 양국 정상이 미국 우방국들과 반도체 분야에서도 적극 협력하겠다는 합의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며 “공급난이 심한 차량용 반도체나 장비 등도 우리가 열악한 분야인 만큼 미국의 도움을 요청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윤경환·조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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