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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폭탄 돌린 방폐장…6~7년 내 원전 15기 ‘셧다운’ 위기 [관점]

◆사용후핵연료 정책 이대로 좋은가

文정부 실행계획 재검토에 5년 허송, 尹정부 외통수 몰려

2031년부터 순차 포화, 탈원전 폐기로 2~3년 당겨질 듯

특별법 제정이 첫 단추, 민주당안 ‘연장가동 차단’ 독소조항

임시·영구처분장 투트랙 실천해야 ‘원전르네상스’ 뒷받침





2003년 ‘부안 사태’는 원자력발전을 하고 남은 방사성폐기물 관리 정책에 일대 전환점이 됐다. 김종규 당시 부안군수가 위도에 방사성폐기물 처리 시설(방폐장)을 유치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면서 촉발된 부안 사태는 정부가 유치 신청을 받은 지 단 10일 만에 위도를 방폐장 부지로 확정하자 유혈 충돌과 학생 등교 거부 등 최악의 사태로 비화했다. 이듬해 주민 찬반 투표에서 91.8%의 압도적 반대가 나오자 노무현 정부는 결국 건설 계획을 백지화했다. 대표적인 ‘님비(Not In My Backyard)’ 시설인데도 주민 의견조차 수렴하지 않은 채 추진한 데 따른 예견된 실패였다. 부안 사태는 정부가 1980년대부터 착수한 방폐장 후보지 확보에 실패한 아홉 번째 사례였다. 앞서 안면도(1990년)와 굴업도(1994년) 등에서도 격렬한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정부는 부안 사태를 계기로 사용후핵연료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과 방사성 오염이 미미한 원전 작업복 같은 중·저준위 처분장을 따로 설치한다는 원칙을 수립했다. 지역 의견 수렴과 공론화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원칙도 새삼 확인했다. 1년 동안 들끓었던 부안 사태로 얻은 값비싼 교훈은 2007년 주민투표 결과 찬성률이 가장 높은 경주를 중·저준위 방폐장 입지로 선정하는 결실을 거두게 된다.

고준위 방폐장 확보는 역대 정부의 ‘뜨거운 감자’였다. 후보지 선정에 착수하는 순간 국정 운영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로 차기 정부에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의 연속이었다. 공론화 원칙이 확립된 노무현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거의 20년 동안 이런저런 계획과 원칙·로드맵만 제시했을 뿐 후보지 공모라는 실행의 첫 단추를 끼운 정부는 전무하다. 정권 차원의 님비 현상인 ‘님트(Not In My Term)’다. 뜨거운 감자는 내 임기 중에 다루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나마 박근혜 정부는 정권 출범 직후인 2013년 10월 발족한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을 토대로 2016년 7월 ‘제1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을 확정했지만 탄핵 국면으로 유야무야됐다. 1차 로드맵은 △12년에 걸쳐 후보지를 선정하고 △중간 저장 시설 확보 △연구용 시설 건설 및 실증 운영 등을 거쳐 2051년 영구 처분장을 완공하는 게 골자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는 한시가 급한 로드맵 실행은커녕 재검토하느라 5년을 허송해버렸다. 재검토는 문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고리 원전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탈원전 정책을 공식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 황당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재검토위원회의 권고안을 토대로 지난해 말 만든 2차 기본 계획이 1차 계획과 거의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부지 선정 기간이 12년에서 13년으로 늘어나고 이를 도맡을 주체로 ‘독립 행정위원회’를 신설한다는 등 의견 수렴 절차를 강화한 정도다. 송종순 조선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애초부터 달라질 게 거의 없었다”며 “현 정부가 탈원전론자들에게 휘둘려 시간만 축냈다”고 비판했다. 환경단체들은 수도 꼭지(원전)를 먼저 잠그고 물(폐기물)을 빼야 한다는 ‘열린 수도꼭지론’을 내세워 아예 재검토위 논의에서 중도 탈퇴했다.

영구 처분장 확보는 진영 논리와 무관하게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7%에 이르는 현실은 원전이 에너지 안보의 중추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고 원전 가동에 따른 폐기물 관리·처분은 우리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다. 원전은 실현 가능한 탄소 중립의 관건이기도 하다. 이미 올해 2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원전 투자를 녹색 경제활동 분류 체계인 ‘그린택소노미’ 로 규정했다. 다만 원전의 녹색 인정에는 2050년까지 고준위 처분장을 운영할 수 있는 계획과 자금을 마련해야 하고 보다 안전한 사고 저항성 핵연료를 2026년부터 사용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유럽이 국제사회에서 탄소 중립 정책을 주도하는 것을 고려하면 원전을 ‘K택소노미’에 반영하더라도 유럽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은 미래 대비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고준위 폐기물 포화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지만 상황이 여간 심각하지 않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수조에서 5년 동안 열과 방사능을 떨어뜨리는 안정화 과정을 거친다. 그다음이 문제다. 천연 우라늄을 핵연료로 사용하는 중수로(월성 1~4 호기)에서 발생한 폐기물은 원전 본부 내 건식 저장 시설인 ‘맥스터’에서 임시 보관하지만 원전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수로의 경우 대체 시설이 없어 원전 수조에 나날이 쌓이고 있다. 현재 50만 다발이 넘는 사용후핵연료가 26개 원전(영구 정지 2기 포함)내 지하 수조에 임시 저장돼 있다. 매년 2만 다발씩 발생해 2031년 고리(기장)와 한빛(영광), 2032년 한울(경주) 원전 등이 순차적으로 포화 상태에 이른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인 지난해 12월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 공사 중단 현장에서 탈원전 정책 폐기 공약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윤석열 차기 정부의 탈원전 폐기로 포화 시점이 2~3년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했다. 치솟는 국제 유가 대응과 탄소 중립 이행을 위해 원전 가동률을 높여야 하고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할 경우 폐기물 발생량이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에 탈원전 폐기에 따른 포화 시점 추산을 재의뢰한 상태다. 황주호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경수로용 건식 임시 저장 시설 확보를 미적대면 원전 ‘셧다운’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며 “새 정부가 전력 수급에 차질이 없도록 국정 과제로 삼아 신속하게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설 건설은 설계와 인허가·제작·시공까지 5~6년 이상이 소요된다. 사회적 수용성 확보라는 과제도 있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면 격납 용기를 수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고리 3기, 한빛 6기, 한울 6기 등 15기 원전이 앞으로 6~7년 뒤인 차차기 정부 임기 초 ‘셧다운’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 있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원전 르네상스’의 키는 방폐장 확보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는 떠넘겨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다. 방향은 명확하다. 당장 발등의 불인 원전 내 건식 저장 시설과 영구 처분장 후보지 확보 등 투트랙으로 실행해야 한다. 2051년까지 영구 처분장을 확보한다는 1차 로드맵은 월성 맥스터의 설계 수명 종료에 대비한 일정표다. 당장 착수해도 간당간당한 셈이다.

월성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건식 임시 저장 시설(맥스터). /사진 제공=한수원


첫 단추는 관련 특별법 제정이다. 정동욱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은 “정권의 부침과 상관없이 일관된 추진 체계를 갖추려면 특별법 제정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며 “경주 방폐장 부지 확정도 2005년 특별법 제정이 밑거름이 됐다”고 설명했다. 윤종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원전 인근 주민들은 원전 내 임시 저장 시설이 영구화할 수 있다는 우려로 폐기물 반출을 요구한다”며 “영구 처분장 추진 계획을 법제화해야 임시 시설을 설치할 때 주민 설득이 용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법 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하지만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탈원전 버전이다. 제정안 32조는 임시 저장 시설 용량을 ‘설계 수명 이내의 가동분’으로 제한하고 있다. 원전의 연장 가동을 원천 봉쇄한 독소 조항이다. 윤 교수는 “월성 맥스터가 기존 법령에 따라 신설·증설된 전례를 감안하면 임시 저장 건을 굳이 특별법에 담지 않아도 된다”며 “중수로와 경수로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기술적 안전 기준은 기존 원자력안전법 고시를 일부 수정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특별법의 핵심 포인트는 영구 처분장 후보지 선정 또는 가동 시점을 명문화하는 것”이라며 “그래야만 폭탄 돌리기 국면을 뚫고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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