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민의 경알못’은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0년 넘게 경제 기사를 썼지만, 여전히 ‘경제를 잘 알지 못해’ 매일매일 공부 중인 기자가 쓰는 경제 관련 콘텐츠 입니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거래되는 주요 광물 중 리튬, 게르마늄, 몰리브덴, 바나듐, 셀레늄 등의 가격은 모두 중국 위안화(RMB)로 표시된다. 철, 우라늄, 구리 등의 주요 광물이 모두 달러로 표시되는 것과 다르다. 무엇보다 위안화는 글로벌 ‘기축통화’로 분류되지 않는 만큼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이 같은 위안화 표시 광물들의 공통점은 바로 중국의 시장 장악력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결국 관련 광물시장과 관련한 중국의 높은 시장 장악력이 달러가 아닌 위안화 가격표시로 이어진 셈이다.
이 같은 관련 광물 시장 장악은 중국 화폐의 가치 상승은 물론, 중국 산업 경쟁력 강화에 크게 일조했다. 실제 차량용 배터리의 핵심원료인 ‘리튬’은 중국이 전세계 가공·정제 공정 점유율의 과반을 차지하며 중국의 글로벌 차량용 배터리 점유율 1위 등극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 10여년간 자원 수급 문제에 손을 놓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격화된 글로벌 공급망 불안 문제에 속수무책이다. 주요 산업의 ‘리스크’ 또한 급증했다. 지난해 갑작스레 벌어진 ‘요소수 대란’이 여타 품목 수급 불안으로 언제든 비슷하게 재연될 수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시간이 없다고 우려한다. 금리, 에너지, 광물, 환경 등 주요 공급망 이슈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열흘 가량 앞두고 있는 만큼 한시바삐 공급망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현 사안의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성 등을 두루 고려하면 대통령 주재의 ‘워룸(전시작전상황실)’을 꾸려 발빠른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각국의 리튬광산 국유화.. 흔들리는 K배터리
10일 외신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각국의 ‘자원무기화’ 추세가 올들어 속도가 붙고 있다. 예전에는 석유나 석탄 등 에너지원이 자원무기화에 주로 활용됐지만 이제는 주요 광물부터 먹거리까지 다방면에서 ‘약한고리’가 발견된다. 실제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산업분야에 들어가는 희토류는 물론 팜유나 밀 등 식재료 가격이 최근 급등하며 에너지와 광물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급속히 전개되는 글로벌 자원무기화가 한국 산업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잘 보여주는 광물이 리튬이다. 멕시코는 앞서 리튬 광산을 국유화 한 데 이어 중남미 국가가 중심이 된 ‘리튬 연합체’ 결성을 추진중이다. 미국은 지난해 1분기에만 자국내 리튬 광산 개발에 2018년 대비 7배 가량 늘어난 35억달러를 투자하며 글로벌 자원전쟁이 대비하고 있다. 중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캐나다, 호주, 칠레 등의 리튬광산에 막대한 투자를 하며 전세계 리튬시장을 좌우하는 ‘큰손’이 됐다.
반면 우리나라는 포스코 등국내기업이 중심이 돼 리튬 확보에 주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맥이 끊긴 ‘자원외교’로 글로벌 자원 쟁탈전에서 한참 뒤쳐졌기 때문이다. 특히 광해광업공단은 문재인 정부의 해외 광물 자산 매각 방침 결정 이후 26개 해외 자산 가운데 11개를 매각했다. 자원빈국 한국이 글로벌 자원전쟁에서 ‘역주행’을 벌인 셈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가 주력인 한국 배터리기업들은 몇년 전부터 니켈이나 코발트 가격 급등 대비책 마련에 분주했지만, 이제는 공급과잉’ 우려까지 나왔던 리튬 수급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며 “중국에 몇년 전 글로벌 점유율 1위 자리를 내 준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라고 푸념했다.
중국은 여기에 더해 니켈이나 코발트가 필요없는 ‘인산·철(LFP) 배터리’를 양산하며 배터리 시장에서 ‘투트랙’ 전략을 구사중이다. LFP 배터리는 NCM 배터리 대비 에너지 밀도가 낮지만, 철(Iron)을 주 원료로 하기 때문에 원재료 수급이 용이하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 3년전 1톤당 1만달러 초반대의 가격을 형성했던 니켈은 올해 4만달러대 까지 치솟으며 글로벌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1위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가 일부 보급형 차종에 LFP 배터리를 탑재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글로벌 코발트 정련 시장의 90% 이상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어, NCM 위주의 K-배터리 생태계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급망 붕괴 속.. 자원부국은 ‘흑자’ ·자원빈국은 ‘적자’
이 같은 글로벌 공급망 붕괴는 러시아와 같은 ‘자원부국’에게는 호재로, 한국과 같은 ‘자원빈국’에게는 악재로 각각 작용중이라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근심을 키운다. 러시아는 서방의 각종 제재에도 불구하고 올 1분기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역대 최고인 580억 달러를 기록했다. 러시아는 세계 1위의 천연가스 수출국인데다, 원유 생산량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인 자원부국이다.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년동기대비 9.6% 증가해, 최근 11년새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자원빈국들은 울상이다. 우리나라는 역대 수출 기록 경신 등의 호재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가격 급등에 두달연속 무역적자를 기록중이다. 지난달 무역적자액만 26억6000만달러에 달하며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연간으로도 무역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과 산업구조가 비슷한 일본 또한 ‘2021회계연도(2021년 4월~2022년 3월)’에 5조3748억엔(약 51조 6000억원)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달러, 유로화와 함께 3대 ‘기축통화’로 분류됐던 엔화 또한 약세에 신음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같은 상황은 일본보다 한국에 치명적이다. 한국무역협회의 ‘한국형 가치사슬의 구조변화 및 우리의 과제’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글로벌가치사슬망(GVC) 지수’는 2015년 56.2%에서 2020년 54.4%로 낮아졌다. 해당 지수는 한국과 여타 국가들간의 산업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느냐를 산출한 수치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GVC 참여율은 중국(36.0%)과 일본(40.5%) 대비 10%포인트 이상 높다.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될 경우 한국이 한·중·일 3국 중 가장 타격이 큰 것은 물론, 여타 국가와 비교해서도 피해가 크다는 뜻이다. 강내영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GVC 평균 지수는 물론 한국의 지수 또한 상당히 낮아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 기준 한국의 무역의존도 또한 59.82%로 주요20개국(G20) 중 67.03%를 기록한 독일에 이어 2위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일수록, 오히려 거대 경제블록 참여나 자유무역협정(FTA) 가입국 확대 등으로 ‘경제영토’를 넓혀야 한다고 조언한다. 해외 주요국과의 경제 의존도를 높여, 지정학적 이슈가 서로간 무역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주요 자원을 자체 생산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한국 입장에서 달리 쓸 수 있는 카드도 없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최근 몇년간 강도 높은 무역조치를 취했지만, 결국 높은 대(對) 중국 경제의존도 탓에 급격한 물가 상승 등 부작용을 겪으며 제 발등을 찍는 모습”이라며 “한국 또한 해당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 공급망 참여률을 제고하는 방식의 통상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도체나 배터리와 같은 한국의 비교우위가 있는 제품을 경제영토 확대 시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통상 전문가는 “한국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같은 다자경제 블록 위에 FTA를 확대하며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참여를 강화해야 한다”며 “한국이 보유한 반도체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獨·日과 다른 韓 산업구조.. 자원외교 강화해야
글로벌 ‘자원부국’과의 경제 협업도 보다 강화해야 한다. 시장에서 경쟁우위가 있는 제품 또한 필수 원자재 확보를 못한다면 순식간에 시장우위가 뒤집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은 지난 2010년 ‘센카쿠 열도 분쟁’으로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2010년 당시 중국의 희토류 수출제한으로 고성능 자석의 원료인 네오디뮴(Nd)과 자석의 내열성을 높이는 디스프로슘(Dy)의 가격이 10배 가량 치솟은 바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전기차 시장 장악에 속도를 내던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기업의 피해가 상당했다.
한국의 산업 구조 또한 공급망 붕괴에 따른 피해 우려를 키운다. 한국은 글로벌 자유무역에 기반한 공급망을 활용해, 가격경쟁력이 높은 완성품 또는 중간재를 양산하며 성장해 왔다. 한국의 주력산업인 메모리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선박,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 이들 산업 분야에서는 중국, 미국, 일본 등 경쟁국이 다수다.
반면 독일이나 일본은 대체불가능한 첨단기기 및 부품 등에 강점이 있어 특정분야에서 경쟁국이 없다시피 하다. 한국이 독일이나 일본 대비 자원외교에 보다 신경을 써야하는 이유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호주는 전략 자원 부분에서, 유럽과 인도와는 인적 교류와 연구개발(R&D) 부분에서 협력 범위를 넓혀 나가는 방식으로 전략을 수립해야한다”고 말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존 자유무역시대에 값싼 원자재를 수출하며 글로벌 무역시장에서 ‘을’이었던 국가들이, 지금과 같은 ‘자원무기화’ 시대에는 ‘갑’이 되어가는 모습인 만큼 이들과의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혼란기에 중심을 잡아 줄 컨트롤 타워 설립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국가경제위원회(NEC)와 같은 대통령 산하의 경제 전담 조직 마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현재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있기는 하지만 환경, 첨단기술, 노동여건, 기술유출 문제 등이의 경제이슈를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조직은 보이지 않는다”며 “정부가 각국의 정책 변화에 따른 기업의 불확실성은 해소해주면서, 기업을 지원하는 ‘워룸’과 같은 기능을 할 조직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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