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닻을 올리면서 금융 감독 기능 조정론이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우리사회를 뒤흔든 사모펀드·머지포인트 사태 등의 감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고 유사 사례의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여소야대 정국을 감안하면 본격적인 논의는 정부 조직 개편과 함께 6·1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제24대 한국금융학회장을 지낸 김홍범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최근 한국경제포럼에 실은 ‘금융감독과 중앙은행:우리나라의 감독 조직화 방안 모색’이라는 논문에서 법률적 독립성을 갖춘 한국은행에 미시건전성 정책과 거시건전성 정책을 맡겨 한은을 중심에 세우는 새로운 감독 개편 방안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금융 감독 체계를 장기간 왜곡시켜온 ‘이원 기관 구조’와 ‘금융감독·금융산업 정책 간 이해상충’의 문제를 단칼에 해결할 거의 유일한 현실적 해법”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현행 통합 감독 체계는 의결기관(정부 조직인 금융위원회)과 집행기관(민간 조직인 금융감독원)으로 감독 당국이 구성된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며 “문화가 크게 다른 두 이질적 조직이 외부적으로는 하나의 감독 당국으로 움직이도록 기대되는 구조가 두 기관 간 상시적 긴장 및 잠재적 갈등의 원천”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금감위가 금융위로 확대 개편돼 금융 감독 정책과 금융 산업 정책을 둘 다 다루게 되면서 두 정책 간 이해상충에 직면하고 정치적 영향력에 노출됐다”면서 현재 금융위가 보유한 금융감독권을 한은으로, 금융산업정책권을 기획재정부로 각각 이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금융위는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금융감독원은 미시·거시 건전성 감독 업무를 한은에 넘기고 영업 행위 감독(소비자 보호) 업무만 맡도록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한은의 외연 확장이 건전성 정책과 통화정책 간 충돌 가능성뿐만 아니라 감독 실패에 따른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평판이 동반 하락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그럼에도 실(失)보다 득(得)이 많으리라는 게 김 교수의 분석이다.
한은 내부에서도 중앙은행의 역할 확대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창용 총재는 취임 후 첫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케이뱅크 공동 검사 안건을 의결했고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단독 검사권 필요성에 대한 질의에 “금융 안정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려면 (단독 검사권과 같은) 금융 안정 관련 권한이 확충될 필요가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최근 5년간 한은과 금감원의 공동 검사는 총 40회(72개사) 이뤄졌다.
관건은 새 정부의 의지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당분간 여러 전선에서 국지전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자칫 논란만 일으킬 수 있는 감독 체계 개편은 지선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다뤄질 수 있을 듯하다”고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110개 국정과제에서도 ‘금융 행정 혁신’의 일환으로 ‘검사·제재 시스템 개편’이 거론되는 수준에 그쳐 기능이 대폭 조정될 확률은 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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