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높은 예대금리차에 역대 최고 이익을 거두고 있지만 시중금리가 올라도 사각지대에 놓인 ‘중도해지이율’은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소비자에게 불리하고 금융기관에 유리한 이자율을 금리 상승 등 변동 요인이 발생해도 의도적으로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16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은 2020년 6~10월 일제히 주요 예적금 상품의 중도해지이율(최저금리 기준)을 인하했다. 중도해지이율은 약정한 만기 전에 돈을 인출할 경우 일종의 페널티(벌칙)로 은행이 일방적으로 정한 금리다. 예치·적립 기간에 비례해 적용 금리가 높아지는 계단식 구조이기는 하지만 수시 입출금 금리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2년 전 하나은행은 △1개월 미만 0.1% △1개월 이상~3개월 미만 0.3% △3개월 이상~6개월 미만 0.5%이던 중도해지이율을 △1개월 미만 0.1% △1개월 이상~3개월 미만 0.15% △3개월 이상~6개월 미만 0.2%로 중도해지이율을 내렸다.
기준금리가 0.5%인 초저금리 시기 예적금 만기 이율도 바닥을 기고 있을 때라 중도해지이율을 낮추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한국은행이 2020년 2월 전격적으로 기준금리를 50bp(1bp=0.01%포인트) 내린 데 이어 5월 25bp 추가 인하하자 시중은행도 수신 금리를 연쇄적으로 내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 상품은 특정 구간의 중도해지이율 하단이 만기 이율에 근접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예금은행의 2020년 8월 신규 취급액 기준 정기 예적금 등 순수 저축성 상품의 수신 금리는 0.80%에 불과했다.
문제는 한국은행이 지난해 8월부터 지난달까지 네 차례에 걸쳐 25bp씩 총 100bp의 기준금리를 인상했는데도 중도해지이율의 원상 복구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은행들이 기준금리 인상을 반영해 대출금리를 곧바로 따라 올리는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금리 인상기 예대금리차(대출금리에서 예금금리를 뺀 값)가 과도하게 벌어지자 은행들은 수신 금리를 발 빠르게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중도해지이율이 제자리에 머물면서 수신 금리 인상 효과는 반감된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0년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서 중도 해지된 예적금 통장은 843만 1537좌로 집계됐다. 2016년까지만 해도 561만 389좌에 그쳤지만 2017년 628만 1318좌, 2018년 681만 5744좌로 늘더니 2020년에는 800만 좌를 돌파했다. 금리 상승기에는 추가 대출보다 예적금 해지를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있어 지난해와 올해에도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높은 우대금리를 제시하는 고금리 특판의 경우에도 예상치 못한 긴급한 자금 수요 등의 영향으로 21.5%(2020년 상반기 판매 특판 예적금 20종 기준)나 중도 해지됐다. 이들 계좌는 만기 금리(4.5%)의 19.1% 수준인 평균 0.86%의 페널티 금리가 적용됐다.
은행권의 불합리한 중도 해지 관련 제도는 2018년에도 도마에 오른 바 있다. 금감원 점검 결과 중도해지이율을 예치·적립 기간에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지급하거나 지나치게 낮게 설정하는 것으로 나타나 호주식의 연동 구조로 개선됐다. 이후 감독의 눈길이 다소 뜸해진 사이 내렸던 중도해지이율을 다시 올리는 데 인색하게 굴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은행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5대 은행의 한 관계자는 “늦은 감이 있다는 데 공감한다”고 했다. 일부 은행은 한국은행이 5월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 시 중도해지이율을 정상화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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