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확보’가 첨단 기술 경쟁력의 핵심 과제가 된 상황에서 반도체 세계 1위 기업인 삼성전자(005930)의 직원 감소는 예삿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실적 호황에 신규 투자 또한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인재 부족’은 핵심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이 같은 일시적 상황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과 맞물려 대폭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 반도체 인력, 세 자릿수 감소=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의 경우 직원 수가 처음으로 5만 명을 넘은 2018년 1분기(5만 794명) 이후 15분기 동안 대부분 기간에 직원 수를 계속 늘려왔다. DS 부문의 직원 수가 줄어든 것은 총 세 번뿐이며 세 자릿수 감소(313명)는 지난해 4분기가 유일하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산업의 부족 인력은 2020년 말 기준 1579명에 달하는데, 국내 대표 기업마저 이를 만회하지 못하고 인재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전 부문의 경우 시장이 어느 정도 포화된 상태라 직원을 더 늘리기가 어려울 수 있지만 반도체는 사정이 다르다”며 “적극적인 인재 확보 노력을 펴고 있는 데다 ‘국내 최고 기업’이라는 상징성까지 있는 삼성전자가 필요 인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인력 지키기도 역부족=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인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칩 설계를 총괄하는 박용인 시스템LSI사업부 사장은 이달 24일 KAIST를 직접 찾아 학생들에게 시스템반도체를 소개하며 ‘인재 선점’에 나설 계획이다. 그간 회사 채용팀이 전국 주요 대학을 돌며 취업 설명회를 개최한 적은 많았지만 주요 경영진이 직접 학생들과 대면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열악한 반도체 인력 시장에서 고급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삼성전자의 의지를 보여준다.
대학 계약학과를 통한 인재 육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수도권 규제의 일환으로 수도권 대학 정원을 제한하고 있다 보니 관련 전공 지식을 갖춘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회사들은 주요 대학과 협약을 맺고 계약학과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계약학과는 정원 제한과 관계없이 학과를 둘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올해 KAIST와 포스텍에 반도체 계약학과를 개설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으로도 근본적인 인력난을 해소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계약학과를 통한 인력 수급은 많아야 1년에 수십 명에 불과한 데다 대학마다 첨단 기술 관련 교수 인력이 부족해 이를 더 늘리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규 인력 확보뿐 아니라 기존 인재를 지키는 일도 어려운 문제다. 삼성전자는 매년 임금을 인상하며 우수 인재를 붙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경쟁 기업들은 더 높은 연봉과 근로 조건으로 유혹하며 ‘인력 채가기’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1인당 평균 급여는 2017년 1억 1700만 원에서 지난해 1억 4400만 원으로 높아졌고 올해도 9%의 임금 인상이 결정됐다. 하지만 경쟁 업체들 또한 비슷하거나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는 데다 비슷한 임금이라면 처우가 보다 나은 회사로 옮기겠다는 젊은 직원들이 늘어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책 지원 없으면 경쟁력 상실=인력 부족 상황은 기업이 자력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결국 정부가 나서 규제를 풀고 적극적인 지원책을 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산업 경쟁이 각국의 주도하에 ‘국가 대항전’ 성격으로 치러지는 만큼 정부가 미래 산업 육성을 위해 더욱 책임 있는 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달 출범한 윤석열 정부 또한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대전 나노종합기술에서 “세계 각국이 반도체 기술과 우수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민관 공동 산학 협력 플랫폼을 구축해 대학과 기업의 연구 성과가 상용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취임 전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 ‘반도체 인력 양성 정책’이 포함되기도 했다. 반도체 특성화 대학 지정, 반도체 학과 정원 확대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지원책에 힘입어 삼성전자의 인력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수년간 추세로 보면 이번 직원 수 감소는 일시적 현상에 가까운 데다 회사의 인력 확보 의지, 정부의 지원책을 더하면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강종 규제를 풀어 첨단 고급 인력을 적극적으로 육성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학부 학생 규제를 풀면 석·박사 인력도 늘어나고 중견·중소기업의 인력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선순환 체계를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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