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한미 양국의 기술 동맹도 한층 강화된다. 경제와 안보가 융합되는 시대를 맞아 전략적 대화 채널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경제안보대화’를 출범하고 ‘한미 공급망·산업 대화’도 장관급으로 격상해 연 1회 개최한다. 특히 원전 동맹도 공식화됐다. 이를 위해 최근 4년간 개점 휴업 상태였던 한미 원자력고위급위원회(HLBC)를 재개해 공동으로 해외 원전 수출에 나서고 소형모듈원자로(SMR) 사업 협력도 강화한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경제 분야 성과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전략적 대화 채널인 NSC 경제안보대화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양국 대통령실이 전략적으로 소통하며 기존 한미 안보 동맹을 ‘경제안보·기술 동맹’ 관계로 확대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 왕윤종 경제안보비서관이 다음 달 중 방미해 타룬 차브라 미국 NSC 기술·국가안보 선임보좌관과 상설 대화 채널을 구축하고 공급망, 첨단 기술, 에너지 등 핵심 분야에서 협력 방안을 구체화하기로 했다.
한미 공급망·산업 대화 역시 장관급으로 격상한다. 이 회의에서는 공급망, 첨단 기술, 수출 통제 등 다양한 이슈를 논의하게 된다. 반도체 등 한국의 첨단 제조 능력과 미국의 기술 역량을 결합해 공급망 위기에 대처하고 시너지를 발휘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인다는 복안이다. 조만간 이뤄질 윤 대통령의 방미 때 첫 회의가 개최된다. 이에 앞서 정부는 다음 달로 예상되는 미국 주도 공급망 장관 회의에 참석해 상호 공급망 협력 방안을 구체화하고 양국의 ‘조기경보시스템’을 연계한 효율적인 정보 공유 방안을 논의한다.
첨단 산업 협력도 강화한다. 대규모 투자·협력 계획을 밝힌 반도체·배터리·전기차뿐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AI), 바이오, 양자 기술 협력도 진행한다. 이와 관련,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은 생명과학 원부자재, 과학 장비 분야 글로벌 기업인 서모피셔사이언티픽과 투자 협력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번 양해각서 체결로 서모피셔사이언티픽은 한국에 바이오 원부자재 생산 공장 등의 건립에 나서게 된다.
우주탐사 협력도 강화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달 탐사 계획인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우리의 기존 공약을 토대로 한미 정상은 우주탐사 공동 연구를 촉진한다. 아울러 한미 민간 우주 대화를 정례화해 우주 분야 기술 교류를 이어갈 예정이다.
한미 간 원전 동맹을 위한 청사진도 나왔다. 원전 수출 협력과 SMR 기술 개발이 골자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전을 운영하고 있지만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시공 능력을 갖춘 한국과의 협력으로 원전 시장에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원전은 101기에 달한다.
세계 원전 시장에서 1·2위를 차지한 중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신규 시장 진출이 제한된 가운데 우리나라의 건설·시공 능력, 미국의 원천 기술과 외교력을 결합하면 체코·폴란드·영국·사우디 등 정부가 추진하는 해외 원전 수주에서 앞서나갈 수 있다는 평가다.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는 “최근 원전 건설에 나선 동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기술력뿐 아니라 안보 측면까지 고려하고 있다”며 “한미 원전 동맹은 이들 국가의 원전 수주에 한 발짝 더 다가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차세대 원전인 SMR 개발과 판매도 협력한다. SMR는 원자로와 증기 발생기, 냉각재 펌프 등 주요 기기를 일체화한 규모 300㎿ 이하 소규모 원전이다. 양국은 미국 주도 제3국 SMR 역량 강화 프로그램 참여 등을 통해 SMR 시장에 공동 진출하고 기업 간 협력도 지원한다. 이미 두산에너빌리티·삼성물산·GS에너지·SK 등이 미국 SMR 기업인 뉴스케일파워·테라파워에 투자한 적이 있는 만큼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SMR 기술 개발에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구체적인 협력 방안은 HLBC에서 논의될 것으로 관측된다. HLBC는 2015년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에 따라 외교부 2차관과 미국 에너지부 차관이 머리를 맞대는 전략 협의체다. 세계 시장에서 한미 원자력 기업 간 경쟁,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 지식재산권(IP) 관련 이견 등의 이유로 2018년 2차 전체 회의 개최 이후 지금까지 열리지 못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원전 수출 진흥을 적극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부 에너지 차관이나 신설이 예상되는 원전 담당 차관보 참가도 거론된다. 정용훈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고위급위원회 재개로 원전 수출을 두고 한미 양국의 협력이 강화될 것”이라며 “미국 에너지부 차관이 참여하는 만큼 우리 산업부에서도 현재 국장급에서 더 고위직이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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