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행동주의를 표방한 사모펀드에 대형 기관투자가들이 적극 투자하고 있어 주주들의 권리 강화 움직임이 주목된다. 한진칼(180640)처럼 대주주를 둘러싼 논란이 제기된 기업들에 대해선 향후 소액주주 뿐 아니라 기관투자가의 주주권 행사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1000억 원 규모의 주식형 사모펀드인 ‘트러스톤ESG밸류크리에이션2호’ 조성을 진행하고 있다. 트러스톤운용은 이번 펀드의 주요 투자 전략으로 대주주 일가를 위해 주가가 억눌려 있거나, 오너 경영의 폐해로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는 상장사들을 발굴해 ‘주주 행동주의’를 발휘해 나갈 예정이다.
이미 일부 공제회들이 수백억원의 자금 투입을 확정했으며 펀드는 4년 만기의 폐쇄형 구조로 한 번 가입하면 중도 환매가 불가능하게 설계할 예정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관투자가는 개방형 펀드 구조를 선호하지만, 주주행동을 통해 주가가 상승 했을 때 곧바로 주식을 팔면 내부자 거래 논란 등의 소지가 있고, 주주간 단결력을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서도 폐쇄형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러스톤운용의 2호 지배구조 개선 펀드는 안정적인 순익을 내는데도 승계를 위해 인위적으로 주가 상승을 막고 있거나, 대주주 일가를 위해 이익을 몰아주는 상장사를 집중적인 투자 대상으로 삼을 계획이다. 연기금 공제회나 금융기관 등 대형 기관투자자가 주요 출자자가 될 전망이며 고액자산가나 패밀리오피스 등 기존에 주주 행동주의 사모펀드에 가입했던 개인 투자자는 일단 대상에서 배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러스톤운용이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를 겨냥해 내놓는 2호 펀드는 1호 펀드가 시장과 주주들의 호응 속에 상당한 성공을 거둔 때문에 더욱 주목 받고 있다. 트러스톤은 2020년 10월 설정한 1호 펀드를 통해 태광산업(003240)과 BYC(001460)등에 투자한 후 현재까지 40% 후반의 높은 수익을 거두고 있다. 650억원으로 출발한 펀드 자산 규모가 수익이 더해지며 800억원대 후반으로 늘었을 정도다.
실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2019년 횡령 혐의로 징역 3년형이 확정돼 2020년 3월 48만원대까지 추락했던 태광산업 주가가 지난해 100만원을 다시 돌파한 것은 트러스톤운용이 투자하며 주요 주주로서 목소리를 높인 덕분으로 투자업계는 평가하고 있다. 태광산업 등은 이 전 회장이 회사에 유·무형의 손실을 안긴 채 경영에서 물러난 후 주가가 크게 저평가된 상황이었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4월 공정거래법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도 3억원의 벌금형을 처분받았다.
주요 공제회의 한 고위관계자는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오너 리스크로 주가가 극히 저평가된 태광산업에 투자하며 기업가치를 성공적으로 올리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면서 “행동주의 투자 분야에서 트러스톤이 국내에선 가장 전문적이면서 세련된 투자 방식을 선 보이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실제 트러스톤운용의 펀드는 외국계 행동주의나 국내 ‘강성부 펀드’ 처럼 대주주와 적대적인 관계로 주주권 행사에 나서진 않지만 경영 참여를 목적으로 공시하고 경영진 면담이나 주주서한, 주주제안을 공개적으로 추진하며 시장의 신뢰를 확보했다. 그러면서 투자 기업의 유휴자산 활용을 통한 배당 확대나 액면 분할을 통한 주식 유동성 확대 등 주가에 실제적 도움이 될 수 있는 요구 사항을 제시하며 소액 주주들의 권익을 높이는데 앞장섰다.
트러스톤측은 1호펀드의 주요 투자처인 태광산업 뿐 아니라 BYC에 투자한 후에도 BYC의 주가가 22만원대에서 44만 수준까지 두 배 가량 급등하는 성과를 도출했다. 트러스톤운용은 태광산업의 지분 6.1%를 보유하고 있으며 BYC는 지분 8.13%를 갖고 있는 2대 주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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