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윤석열 정부 출범을 계기로 경영 행보를 본격 재개한 가운데 오는 7월 미국에서 열리는 ‘선 밸리 콘퍼런스’ 참석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미중 갈등 속 자유진영의 글로벌 공급망 동맹 결성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민간 외교관’ 역할을 자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31일 재계에서는 미국 아이다호주의 휴양지 선 밸리에서 매년 7월 열리는 ‘앨런&코 콘퍼런스’에 이 부회장이 참석할지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이 행사는 미국 투자은행 앨런&컴퍼니가 1983년부터 주최한 글로벌 비즈니스 회의다. 지명을 따 선 밸리 콘퍼런스라고도 부른다. 글로벌 미디어와 정보기술(IT) 업계 거물들이 주요 초청 대상자여서 이른바 ‘억만장자 사교클럽’이라고도 알려졌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빌 게이츠 MS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설립자,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등이 참석한다. 여기에 초청받을 자격을 갖춘 한국인은 이 부회장이 유일하다.
이 행사는 거대 기업의 각 수장들이 인수합병(M&A)이나 협력체계 구축 등을 집중 논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제프 베이조스의 2013년 워싱턴포스트 인수, 디즈니의 1996년 ABC 방송사 인수 논의 등이 이 자리에서 시작됐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스마트폰 특허 소송을 철회하게 된 계기도 2014년 이 부회장과 쿡 CEO의 선 밸리 만남이었다. 이 부회장이 갖춘 글로벌 네트워크가 가장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장이란 얘기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상무 시절인 2002년부터 거의 매년 이 행사에 참석했다. 그러다가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2017년부터는 참석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두 차례나 수감되면서 5년 동안 이 행사에 가지 못했다. 이 부회장은 구속수감 중이던 2017년 법정에서 “선 밸리는 1년 중 가장 바쁘고 가장 신경 쓰는 출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윤석열 정부 들어 경영 보폭을 넓히는 점을 들어 올해에는 6년 만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경기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이 위기를 맞은 만큼 이 부회장이 직접 돌파구를 만들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성탄절 사면 불발 직후인 지난해 12월 27일 청와대 행사 이후 잠행을 이어가던 이 부회장은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과 만찬을 시작으로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일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 공장에서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안내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21일에도 한미정상회담 만찬에 참석해 글로벌 반도체 설계전문회사(팹리스) 퀄컴의 크리스티아누 아몬 CEO를 마주했다.
24일에는 앞으로 5년 간 문재인 정부 때보다 30%(약 120조 원)가량 늘린 4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국내 투자 규모만 지난 5년보다 40%(약 110조 원)가량 더 확대해 5년간 명맥이 끊긴 대형 인수합병(M&A) 기대감을 높였다. 25일 ‘중소기업인대회’에서는 기자들과 만나 “목숨을 걸고 투자에 나섰다”고 강조했다. 30일에는 서울 서초 사옥에서 팻 겔싱어 인텔 CEO과 만나 저녁 식사까지 함께했다. 그야말로 광폭 행보다.
문제는 ‘취업 제한’ ‘재판 일정’ 등 사법 리스크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의 방미 일정이 윤 대통령의 답방 일정과 겹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경제사절단에 포함될 경우 선 밸리 콘퍼런스 참석도 한층 자연스러워지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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