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 사태 이후 암호화폐 업계 내부에서 공동 대응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하지만 제각각 목소리만 낼 뿐 실효성 있는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특히 루나 사태 당시 서로 다른 대응으로 투자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던 암호화폐거래소들도 이해득실만 챙길 뿐이다.
31일 암호화폐 업계에 따르면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KDA)는 루나·테라 사태를 계기로 ‘가상자산 상장 및 사후 관리 공동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기로 했다. 6월 중 업계 전문가, 거래소 대표, 정부 관계자 등이 참석하는 정책 포럼을 개최하고 빠른 시일 내 유의종목 지정, 거래 지원 및 입출금 중단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 시행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특히 연합회가 추진하는 가이드라인에는 상장에 대한 내용도 담겼다. 연합회 관계자는 “일부 투자자들은 국내 5대 암호화폐거래소들이 루나·테라를 어떤 기준으로 상장했는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며 “이용자들의 투자 결정에 핵심적 요인인 상장 가이드라인도 동시에 마련하고 심사 기준을 공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합회의 이 같은 구상은 선언적인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연합회 회원사가 코어닥스·프로비트·비트레이드·플랫타익스체인지 등 4개 중소형 거래소에 그치는 데다 5대 거래소는 일률적인 상장 기준을 마련하고 상장 심사 과정을 공개하는 데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5대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물론 전체적으로 중지를 모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거래소마다 (운영 등이) 다른 부분이 있고 시장 자체가 하나의 업체로 통일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장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다. 또 다른 거래소 관계자도 “상장 평가 지표를 공개하면 상장 브로커가 개입하는 등 논란이 생길 우려가 있다”며 선을 그었다.
5대 거래소는 상장에 관한 내용은 제외하고 입출금 중단, 거래 지원 종료 등을 조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마저도 암호화폐 투자자 보호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말만 무성할 뿐 어느 거래소도 먼저 나서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24일 당정 간담회 당시 나온 협의체 추진 방안도 전혀 몰랐던 내용”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앞서 이석우 두나무 대표는 당시 간담회에서 “주요 거래소 간 협업 체계 논의를 통해 유사한 긴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공동 대응 방안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도록 논의하겠다”고 약속하며 이번 공동 대응책 마련 논의에 불을 지폈다. 결국 루나 사태에 당정 간담회를 열고 5대 거래소를 소집했지만 루나 2.0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1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대책이 나오지 않은 셈이다.
암호화폐 가이드라인 탄생 자체가 어려운 것은 주요 거래소들이 각자의 이해득실만 따지며 협업하지 못하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원화 거래소들은 3월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트래블룰’ 도입 때도 트래블룰 공동 대응을 위한 합작 법인을 설립했지만 한 달 만에 업비트가 탈퇴하면서 쪼개졌다. 이번 사태에서도 거래소들은 루나 입출금과 관련해 ‘입출금을 막는 것과 풀어두는 것 중 어떤 것이 바람직한 투자자 보호책인가’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다만 여당이 지방선거 이후에도 암호화폐 업계를 어느 정도 압박하느냐에 따라 공동 대응책이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국민의힘이 지방선거 이후 루나 사태와 관련해 제2, 제3차 당정 간담회를 추가 진행하고 청문회도 예고하며 입법 전이라도 민관 주도 투자자 보호 대책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한편 루나 2.0은 이날 한때 시초가 대비 79.5% 오른 개당 1만 4590원을 기록했다가 다시 1만 780원으로 빠지는 등 유통 물량 제한 조치에 급등락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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