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세계 미디어·정보기술(IT) 업계 거물들의 모임인 ‘선밸리 콘퍼런스’에 직접 참석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전자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5년간 450조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기로 약속한 만큼 이 부회장이 이번 행사에서 시스템 반도체 관련 인수합병(M&A) 논의를 본격화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1일 정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7월 미국 아이다호주의 휴양지 선밸리에서 열리는 ‘앨런&코 콘퍼런스’에 직접 방문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성사될 경우 2016년 이후 6년 만의 참석이다. 미국 방문 자체는 지난해 11월 이후 8개월 만이다.
이 행사는 미국 투자은행(IB) 앨런&컴퍼니가 1983년부터 매년 주최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회의다. 지명을 따 선밸리 콘퍼런스라고도 부른다. 첨단 산업과 투자 업계 거물들을 주로 초청하기에 ‘억만장자 사교 클럽’이라는 별칭도 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설립자,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등이 주요 참석자다.
이 행사는 단순 사교 활동뿐만 아니라 거대 기업의 수장들이 M&A나 협력 체계 구축 등을 논의하는 장으로도 유명하다. 베이조스 창업자의 2013년 워싱턴포스트 인수, 디즈니의 1996년 ABC 방송사 인수 논의 등이 모두 이 자리에서 시작됐다. 이 부회장은 2014년 쿡 CEO와 직접 만나 삼성전자와 애플의 미국 외 지역 스마트폰 특허 소송 철회 계기를 마련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상무 시절인 2002년부터 거의 매년 이 행사에 참석하다가 국정 농단 사태가 불거진 2017년부터 발길을 끊었다. 이 부회장은 구속 수감 중이던 2017년 법정에서 “선밸리는 1년 중 가장 신경 쓰는 출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 가운데는 올해도 이 부회장만 유일하게 초청 자격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이번 선밸리 콘퍼런스에서 시스템 반도체 관련 M&A 기회를 모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만 TSMC를 제치고 ‘2030년 시스템 반도체 1위’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M&A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적기 투자와 규모의 경제를 동반하지 않으면 2019년 이 부회장이 공언한 구상은 현실화하기 쉽지 않다.
실탄도 충분하다. 지난달 24일 삼성전자는 앞으로 5년간의 투자 금액을 문재인 정부 때보다 30%(약 120조 원)가량 늘린 450조 원으로 잡아 놓은 상태다. 삼성전자의 대형 M&A는 2017년 초 미국 전장 기업 하만 인수가 마지막이다. 이 부회장은 5월 21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에서 크리스티아누 아몬 퀄컴 CEO를 마주하고 30일에는 서울 서초 사옥에서 팻 겔싱어 인텔 CEO과 만나 저녁 식사까지 함께했다.
‘취업 제한’ ‘재판 일정’ ‘민간 사교 명목’ 등이 출국에 걸림돌로 지목되는 만큼 이 부회장이 선밸리 콘퍼런스 참석과 함께 미국 정부 관료들과의 공식 만남 일정을 병행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부회장은 현재 해외에 나가기 위해서는 일일이 법무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관련 1심 재판에도 매주 출석하고 있다.
5월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삼성전자 평택 공장 방문으로 글로벌 공급망 강화를 위한 명분은 충분히 세웠다는 분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올 3월 백악관에서 주재한 반도체 대책 회의에서도 외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삼성전자를 초대하기도 했다.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 착공식 등 산적한 현지 현안도 방미 일정의 변수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의 방미 일정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답방 기간과 겹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정재계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이르면 7월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경제 사절단에 포함되면 선밸리 콘퍼런스를 위한 출국 부담도 한결 줄어든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아직 일정을 공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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