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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여행 언제 갈지 모르지만 환전부터”…엔저에 은행 북적 [조지원의 BOK리포트]

'1달러=133엔' 엔화 20년 만에 최저

시중은행에 엔화 환전 고객 늘어나

외환예금 달러·위안 감소에 엔화 증가

여행 회복 기대에 투자 목적 수요도

日기업과 경쟁하는 韓기업은 울상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의 엔화와 달러화. 연합뉴스




“엔화 바꾸러 온 사람이 오늘만 벌써 다섯 명을 넘었네요.”

7일 오후 서울 시청역 인근에 위치한 한 시중은행 은행원은 요즘 들어 엔화 환전 고객이 부쩍 늘었다고 귀띔했다. 투자를 위해서 바꿔 놓거나 언제 일본 여행을 갈 수 있게 될지 몰라도 엔화가 쌀 때 미리 사두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날 은행원이 당장 쓸 돈인지 아니면 보관용인지 묻자 한 엔화 환전 고객은 “여행 갈 때를 대비해 바꿔놓으려고 한다”고 답했다.

역대급 엔저 현상에 엔화 환전 수요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 거주자 외화예금 통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과 개인이 보유한 엔화 잔액은 올해 4월 56억 6000만 달러로 지난해 4월(54억 1000만 달러 대비 4.6% 증가했다. 한은은 엔화 잔액을 달러화로 환산해 표시하기 때문에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가 하락한 것을 감안하면 실제 엔화 잔액은 더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은 관계자는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 개인 입장에서는 환전하려는 수요가 늘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엔화 잔액 증가세는 다른 통화와 비교하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달러화 잔액은 올해 4월 869억 9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948억 3000만 달러) 대비 8.2% 감소했다. 특히 개인이 보유한 달러화 잔액은 200억 4000만 달러에서 153만 4000만 달러로 23.4%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위안화 잔액은 10.8% 감소했다. 다만 유로화 잔액은 20.7% 늘었다.

7일 일본 도쿄의 한 외환중개업체 모니터에 엔·달러 환율이 게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거주자의 엔화 잔액은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40억 달러 수준이었으나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늘었다. 올해 3월에는 57억 3000만 달러로 통계가 제공된 2012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수준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인 저금리로 돈이 많이 풀린 영향도 있지만 안전 자산인 달러화와 엔화로 자금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특히 엔화는 역대급 엔저 현상이 엔데믹 이후 여행 보복 소비와 겹치면서 환전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향후 엔화 가치가 상승 전환할 것으로 보는 투자 목적도 나타나고 있다. 이날 도쿄외환시장에서 거래된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는 1달러당 133엔대로 2002년 4월 이후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적인 통화정책 정상화 흐름 속에 일본만 경기 부양을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기대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리는 반면 일본은행은 만성적인 저물가를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돈을 풀어 기대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상황이다.



엔화 환전 수요는 일본이 자유 여행을 전면 개방한 이후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일본은 입국자 수 상한을 2만 명까지 늘렸다. 관광객 입국을 허용하지만 가이드를 동반한 단체 관광으로 한정했고 한국에서 여행을 하려면 관광 비자도 받아야 한다. 여행업계에서는 개인 관광은 8월 이후에나 허용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출국자 수는 2017년 714만 명, 2018년 753만 명에서 2019년 일본 수출 규제 이후 560만 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지난달 2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 스크린에 도쿄 나리타 공항행 정보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다만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국내 기업 입장에서 엔저는 반갑지 않다. 일본의 실질실효환율이 명목통화가치 하락과 저물가 영향으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질실효환율은 각 국가의 물가 수준을 고려한 실질환율을 통해 생산과 소비에 대한 실질적인 구매력을 평가하는 지표다. 100보다 높으면 기준연도보다 화폐 가치가 고평가(통화 강세)된 것으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반대로 100보다 낮으면 저평가(통화 약세)된 것으로 수출 경쟁력은 강화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4월 엔화 실질실효환율은 60.91(2010=100)로 1972년 이후 5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본에서는 엔화가 약세인 만큼 수출 증가 효과를 기대하는 동시에 자국 기업의 리쇼어링(국내 복귀)도 기대하고 있다. 반면 원화 실질실효환율은 102.41로 100을 웃돌고 있어 일본 대비 수출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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