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신용평가가 최근 몇 년 간 급속도로 불어난 장기CP(기업어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습니다. CP란 통상적으로 만기가 1년 이내인 단기 증권을 가리키는데요. 단기 자금인 만큼 금융감독원 신고 의무를 면제해 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보다 간편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만기가 1년을 넘어설 경우 회사채처럼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요. 예외적으로 전매 제한과 보호예수 등을 활용하면 이를 비껴갈 수 있습니다. 형태는 단기 증권이지만 실질상 회사채와 비슷한 셈이지요. 나신평이 지적한 것은 이 부분입니다. 신용평가사는 CP의 신용등급을 평가하면서 채무증권의 만기가 1년 미만이라고 전제하는데요. 사실상 회사채처럼 3~5년, 최대 10년까지 CP 만기를 늘리면서 부여받은 단기신용등급과 괴리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신용도 평가도 회사채(20단계) 대비 12단계로 다소 완화돼 있습니다.
장기CP는 2020년 하반기 이후부터 분기별 발행액이 4조 원을 넘어서는 등 시장규모가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현재 추세가 지속될 경우 장기CP 잔액은 올해 말 4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장 많은 규모를 보유한 것은 롯데그룹입니다. 올해만 롯데지주(004990)와 롯데하이마트(071840), 롯데알미늄, 롯데렌탈(089860), 롯데글로벌로지스 등이 5600억 원 어치를 발행하면서 전체 발행량(8400억 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롯데그룹이 장기CP를 적극 활용하는 것은 시장에서의 신용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목적이 가장 큽니다. 신용도가 낮거나 실적 악화가 불가피해 전망이 좋지 않은 기업들은 공모 시장에서 투자수요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찌어찌 조달을 하더라도 발행금리가 높아지면서 개별민평금리(민간 채권평가사가 평가한 기업의 개별 금리)가 상승합니다. 추후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단 얘기입니다. 특히 지금처럼 금리 상승기에는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롯데지주의 민평금리(3일 기준)는 1년물 3.135%, 3년물 4.027%로 동일 신용등급(AA) 민평금리 2.972%, 3.852% 대비 약 16~18bp(1bp=0.01%포인트) 높습니다.
나신평은 장기CP에 대해 '신용평가-수요예측-시가평가'라는 자본시장 규제 수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각지대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올해같은 금리 상승기에는 채권상품에 대한 환매 유인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팔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투자자들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도 봤지요. 이같은 문제점은 자금 소요가 많아지는 연말에 더 두드러질 수 있다고도 경고했습니다. CP 쏠림 현상이 심한 만큼 롯데그룹 입장에서도 추후 롤오버 등 리파이낸싱 과정에서 비용이 크게 증가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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