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추진했던 완화적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하나둘씩 거둬들이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금융지원 조치 정상화 이후 기업 부실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선제적인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코로나19 이후 부채가 지나치게 많거나 번 돈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이른바 좀비기업이 크게 늘어난 만큼 기업 채무조정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14일 한국은행은 ‘기업 채무조정제도 개선에 관한 글로벌 논의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최근 금융안정위원회(FSB),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향후 코로나19 지원조치 정상화 과정에서 과다부채 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도산 가능성이 있는 점을 고려해 채무조정제도의 선제적 정비를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0년 기준 한계기업 비중이 18.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3.4%보다 5.5% 높은 수준이다. 코로나19 이후 과다부채 기업이나 이자보상배율 1 미만 기업 비중이 늘어난 만큼 부도 가능성이 커져 채무조정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기업 채무조정은 상환기일 연장, 원리금 감면, 출자전환 등 채무 사항 변경을 말한다.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커서 회생 가치가 높은 기업은 해체하기보다 가능한 존속시켜 경제적·사회적 손실을 줄이자는 것이다. 채무조정은 회생절차, 혼합형 워크아웃, 강화된 워크아웃, 자율협약 등 4가지가 있다. 우리나라는 몇 차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법률에 기초한 강화된 워크아웃, 회생 전문법원 설치·운영, 중소기업 회생절차 간소화 제도 등을 갖췄다.
하지만 주요국 제도 개선 사례를 비춰봤을 때 여전히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먼저 채권은행은 채무조정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모펀드를 통해 채권은행으로부터 구조조정 기업을 매입해 채무조정, 신규자금 투입, 사업 구조조정 등 채무조정에 적극적인 역할을 맡길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연구진은 우리나라의 자율협약에 의한 채무조정이나 워크아웃은 채권자 주도로 이뤄져 채무자가 절차에서 배제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공정한 제3자 역할을 하는 전문가 육성과 활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중소기업이 회생절차를 이용할 경우 비용과 시간 면에서 진입장벽이 높아 파산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보완할 법원 외 채무조정 절차도 필요하다. 또한 채무자 기업에 대한 실질적이교 정교한 신용평가 등을 통해 종래 재무상태가 건실한 기업이 코로나19로 인해 악화된 곳인지, 가까운 장래에 수익 창출이 예상되는지, 조정된 채무를 성실히 상환하는 지 등을 수시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정혜리 한은 과장은 “기업 채무조정과 관련된 국제기구의 논의와 해외의 관련 제도 개편 움직임을 꾸준히 모니터링하는 노력도 지속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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